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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한 사람에게

한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 : 즐거움, 좋음, 근사함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할까?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할까? 다시 묻자. 한 사람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사람은 ‘앎’이 아니라 ‘즐거움’, ‘옳음’이 아니라 ‘좋음’, ‘훌륭함’이 아니라 ‘근사함’을 따라 변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돈이 충분치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보자. 그는 변할까? 아마 아닐 게다. 그 ‘앎’과 관계없이 악착같이 돈을 벌려기 위해 스스로를 소모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게다. 아침에 물을 마시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는 아마 여전히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살 것이다.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 클래식 음악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힙합만을 들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변할 수 있을까? 언제 돈이 충분치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언제 물을 마시며 아침을 시작하는 습관을 갖게 될까? 언제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까? 그건 돈이 충분치 않지만 자유로운 삶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느끼게 될 때, 물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느끼게 될 때,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근사한지’ 느끼게 될 때 일 게다. 이처럼 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즐거움’, ‘좋음’, ‘근사함’에 달려 있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들 : 즐거움, 좋음, 근사함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즐거움’, ‘좋음’, ‘근사함’의 대상을 발견하게 되면서 한 사람은 변한다. 나 역시 그렇게 변했다. 과거 어느 시점의 나는 명품시계·정장, 외제 차에 열광했고, 그 부유한 삶을 살기 위해 옆 사람을 밟고 가는 것은 당연한 일 혹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철학이 좋고 글 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람들의 즐거운 이야기에 함께 웃고, 아픈 이야기에 함께 우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변했다. 무언가를 알게 되어서, 훌륭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서 그런 게 아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글 쓰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좋고 근사한 삶인지 알게 되어서다. 예전의 나는 외제차를 타고 다는 사람들을 훔쳐보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탁월한 사유를 하는 사람,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을 훔쳐보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남을 짓밟고 올라서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을 근사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고, 그네들이 상처받을 때 아파해주는 사람을 근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변했다.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날 수 있기를


사르트르의 말처럼 만약 대자적 성찰로 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면, 그건 한 사람이 대자적 성찰을 통해 자신만의 ‘즐거움’, ‘좋음’, ‘근사함’의 대상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자적 성찰을 통해 ‘앎’, ‘옮음’, ‘훌륭함’을 깨닫게 되더라도 우리네 삶은 잘 변하지 않는다. 매일 늦잠을 자는 아이가 대자적 존재로서 ‘더 이상은 이제 이렇게 살 수는 없어!’라는 자기 성찰을 하게 되더라도 아마 십중팔구는 작심삼일로 끝날 게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아이가 대자적 자기성찰을 통해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라는 걸 느끼게 된다면, 그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새벽 일찍 일어난다.


 대자적 성찰을 통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한다면, 그건 자신의 내면에 깊이 숨어 있는 ‘즐거움’ ‘좋음’ ‘근사함’의 대상일 것이다. 그래야만 작심삼일이 아니라 온전히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결심한 이후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의 인내 없음을 자기 반성할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근사하게 느끼는 대상들이 없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볼 일이다. 우리는 모두 즐겁고, 좋아하고, 근사한 어떤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추구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과거의 자신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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