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1.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경제적 부' VS '실질적인 부'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부자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넓고 화려한 집에서 살고, 근사한 옷을 입고, 명품 백을 마음껏 사고, 고급 외제 차는 두 서너 대 쯤 갖고 있는 그런 부자를 한 번쯤 꿈꾸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평범한 우리는 부자는 고사하고 당장 다음 달의 생활비, 갚아야 할 대출금에 쪼들리며 살고 있으니까. 어쩌면 그런 빡빡하고 암울한 현실 때문에 우리는 더욱 부자를 꿈꾸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의 구질구질한 삶이 아니라 화려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그 부자의 삶을 말이다.


 자, 이제 냉정하게 한 번 물어보자.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부자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가 없다면, 혹은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평범한 월급쟁이라면 화려하고 여유 있는 부자가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비관적인 게 아니라 지금 현실이 그렇다. 대출금 갚으랴, 아이들 키우랴, 노모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랴 부자는 고사하고 항상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살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 내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부유해지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부유해지기 상당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칼 맑스, 자본주의를 폭로한 사람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자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성급하게 답하기 전에 먼저 탁월했던 철학자를 한 사람 만나보자. 많은 철학자들 중 자본주의와 부(富)에 대해서 누구보다 깊게 사유했던 사람은 단연 ‘칼 맑스(1818~1883)’다. 그는 이 부라는 것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설명을 한 적 있다. 그는 부라는 것을 ‘경제적인 부’와 ‘실질적인 부’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경제적인 부’라는 것은 처분 가능한 경제적인 자원의 양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지금 당장 팔아서 돈으로 만들 수 있는 집, 자동차, 냉장고 등의 자원을 말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는 지금까지도 우리가 일반적인 부라고 여기는 것이다.


 재미있는 그리고 주목해야 할 점은 맑스가 말한 ‘실질적 부’라는 개념이다. 맑스가 말한 ‘실질적인 부’는 필요한 노동시간 이외에 가처분시간이다. 여기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돈을 버는 데 사용하는 시간이 이외에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시간이 바로 '실질적인 부'라는 이야기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아주 기묘한 반전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이 되고, 우리가 가난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부자가 되는 기묘한 반전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지인 중에 대기업 임원이 한 명 있다. 그는 일반 월급쟁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그는 하루에 12시간 넘게 직장에 매여 있고, 게다가 주말에도 가족들과 여행은 고사하고 항상 직장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반면 친구 중에 꽤 좋은 외국계 기업에 들어갔지만, 이내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다녀온 이가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의 경험을 닮은 책을 썼고, 또 자신이 가진 재능을 활용해 이러저런 일을 하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 친구는 돈은 앞의 임원만큼 못 벌지만 낮잠을 자고 싶을 때 자고, 자신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게 산다.


‘경제적 부’자이 아니라 ‘실질적 부’자가 진짜 부자다.

사람들은 그 둘 중에 누가 더 부유하다고 생각할까? 사실 생각할 것도 없다. 다들 임원이라고 믿고 있을 테다. 그 임원은 좋은 차, 좋은 집도 있고 억대 연봉도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임원이 부자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부’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만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임원의 삶을 ‘실질적 부’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그는 가난하게 짝이 없는 사람이다. 하루 종일 직장에 매여 있고, 주말에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셈이니까. 본인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시간이 없다는 측면에서 그는 분명 아주 가난한 사람이다.


 하지만 직장을 때려 친 친구는 다르다. 넉넉하지 않고, 다소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생계를 꾸려갈 정도의 돈을 벌고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그것도 아주 많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버는 일정 시간을 제외하면 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는 ‘경제적인 부’자는 아닐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실질적인 부’자다. 단언하건대 타임머신을 타고 그 둘은 맑스에게 데려다 놓을 수 있다면, 맑스는 분명 내 친구를 더 부자라고 말할 것이다.


 돈에 찌들로 찌든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단순한 말장난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고 할까? 통장에 ‘0’이 몇 십 개 찍힌 통장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돌고 돌아 더럽게 그지없는 돈이라는 종잇조각을 집에 잔뜩 재어놓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의무로 가득 찬 노동시간을 줄이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 아닌가? 그런 ‘실질적 부’를 사용하기 위해서 부자가 되려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다. 바로 시간이다. 돈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대체로 주객이 전도된 채로 산다. 때로 돈을 왜 버는지 조차 모르면서 그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돈을 벌려고 기를 쓰며 산다. 때로는 아무 근거 없는 미래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모조리 돈을 버는데 헌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경제적인 부’자가 되고자 애를 쓰느라 ‘실질적 부’를 낭비하면서 실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게다. 

매거진의 이전글 20.돈에 관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