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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돈에 관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법

'돈을 쓰는 자유'가 아닌, '돈으로부터 자유'를 위하여

불평불만하기     

돈이 없을 때 불안한 감정이 드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돈에 관한 불안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먹고 살수만 있다면 다행이다’라는 '소극적 행복'에 머물게 된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자. 돈이 없어서 극심한 불안감을 안고 사는 사람이 과연 적극적 행복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먹고 사는 ‘소극적 행복’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행복하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수만 있다면 행복한 것 아니에요“라고 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삶의 행복은 먹고 사는 ‘소극적 행복’에 있지 않다. 하고 싶은 일들을 향유하면서 사는 ‘적극적 행복’을 누리는 것에 우리의 진짜 행복이 있다. 돈에 관한 강박이나 불안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소극적 행복’에 머무르게 만들기 때문일 게다. 그러니 돈에 관한 강박이나 불안을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빨리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적극적 행복’을 찾을 엄두라도 낼 수 있을 테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기본적인 태도는 끊임없이 불평불만 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덜거려야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우선 기본적인 사회 안정망을 구축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비판하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정부에 전달해야 한다. 방법은 각자의 사정에 맞춰 하면 된다. 시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고, 그것이 여의치 않는 사람은 정당 활동이나 선거나 투표 혹은 다른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면 된다.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분명하고 단호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남들만큼 노력하면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누군가 기본적인 생계나 생존의 문제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명백히 국가나 정부의 책임이다. 평생을 근면하게 살아온 사람조차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돈에 관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면, 그 책임은 국가에게 묻자.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잊지 말자. 지금 겪고 있는 돈에 대한 강박이나 불안은 국가라는 공동체가 건강하게 잘 운영되기만 해도 현저히 그 강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내면의 상흔 털어내기

그와 동시에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돈에 대한 강박과 불안의 상흔도 털어내야 한다. 이것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분명 예전에 비하면 돈에 대한 강박이나 불안이 훨씬 덜 하다. 어떻게 그 강박과 불안을 극복했을까? 역설적이게도 그나마 있는 돈을 쓰면서 그것을 그런 강박이나 불안을 극복했다. 궤변이 아니다. ‘돈을 쓸려고 해도 뭐가 있어야 쓸 것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게다. 하지만 돈에 관해서 엄살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정직해져야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돈에 관한 강박이나 불안이 한동안 아주 심했다. 매달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이 끊겨서 통장 잔고가 하루가 다르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통장 잔고를 보며 불안해하는 내 모습에 짜증이 났다. 그날 미친 척하고 영상 제작을 하고 싶어 하던 친구에게 100만원이 훌쩍 넘는 캠코더를 사줘버렸다. 조금 남은 돈을 평소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줘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통장에 남은 돈은 8만원이었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돈이 없다는 엄살을 부리는 대신 그마나 가진 돈을 모조리 다 써버렸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어가면서 여지없이 점점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그냥 그 불안감을 참아 보기로 했다. 그 불안감을 참으며 살다보니 어찌 어찌 돈을 조금 벌게 되기도 하고 또 돈이 없으면 적게 쓰기도 하면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지기는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깨달음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심각한 생계의 문제에 위협을 받을 정도가 아니라면 돈이 없는 것으로 불안할 필요는 없다. 정말이다. 그때그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해나가다 보면 정말 어떻게든 살아지니까. 나는 그것을 삶으로 확실히 경험했다.

      

'돈을 쓰는 자유'가 아닌, '돈으로부터 자유'

그 소중한 경험 덕분으로 돈에 관한 강박이나 불안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졌다. 물론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돈이 없을 때, 전혀 불안하지 않거나 전혀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불안·걱정을 스스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다. 돈에 관한 강박이나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 일정 정도 없어지는 빈곤의 상태를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늘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안도하는 사람은 결코 돈에 대한 강박과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돈이 없을 때 느껴지는 불안을 고스란히 감당하면서도 일정 기간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발적 빈곤의 경험을 딱 한 번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돈에 관한 강박이나 불안은 현저히 줄어든다. 마치 그리도 무서워하던 번지 점프를 딱 한번만 하고 나면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그때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된다. 삶을 유지하는데 그다지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의 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충분히 벌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머릿속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이 바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 곧 자신감일 테다. 그런 자신감이 생겼을 때 ‘돈을 쓰는 자유’가 아니라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될 게다.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될 때 비로소 돈 관한 불안을 통제할 수 있다. 바로 그 때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리게 된다. ‘소극적 행복’에 안주하는 삶이 아니라 진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적극적 행복’으로 다가설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얻게 될 테니까 말이다. 빈곤에 빠지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이 행복이라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초라한 것일까? 단 한 번뿐인 인생, 그것도 끽 해봐야 100년도 채 살지 못할 우리네 인생에서 진짜 행복은 ‘이정도면 충분해’라는 ‘소극적 행복’이 아니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라는 ‘적극적 행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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