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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러 와서 '가르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선생과 학생 사이를 부유하며 알게 된 것

“너무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선생을 자처하는 일을 하면서 종종 듣게 되는 말입니다. 아마 “아니에요. 그건 이거예요.”라는 단정적 표현법, “제 말 이해되시나요?”라는 계몽적 되물음 같은 태도들 때문일 거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 태도들은 종종 수업을 듣는 어떤 분들에게 불편함과 거북함을 주곤 합니다. 그걸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빌어먹을 철학을 한 까닭에, 누군가 저에 대한 의견(조언, 충고, 비판, 비난)을 말하면 상대보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이 생겨버렸습니다. 인생 편하게 살긴 틀렸습니다.


 “나는 정말 너무 가르치려고 하는 걸까? 그렇다면 왜 그러는 걸까?”라는 질문을 한 동안 부여잡고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에 정직한 답은, ‘잘난 척’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난 이런 것도 알고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 겁니다. 하긴 왜 안 그럴까요? ‘나는 작가이고 철학자다’라고 스스로를 긍정하려고 애를 쓰고는 있지만, 부지불식간에 제게 스며드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종종 저를 초라하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수업을 할 때만큼은 못난 나를 달래주려, 잘난 척하고 싶었던 걸 겁니다.


 제가 너무 가르치려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함께 감동하고 두근거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 삶을 구원해준 철학, 너무나 근사한 철학자들에게 받았던 그 설렘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건 이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아니에요. 그건 이거예요”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했던 것도, 수업 중간 중간 “제 말 이해되시나요?”라고 되물었던 것도, 제가 감동받았던 지점에서 함께 두근거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정말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철학이란 머리를 때려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이니까요.


 앞으로도 저는 더 가르치려고 할 겁니다. 세상의 시선에 쪼그라들어 잘난 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 그렇게 할 겁니다. 이건, 제 수업을 들으신 분들이 아직 모자란 사람을 선생으로 만난 업보라고 여기며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네요. 또 앞으로도 저는 더 가르치려고 할 겁니다. 제가 철학 책을 넘기며 설레며 웃고 울었던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드리기 위해서요. 제대로 가르쳐 머리를 제대로 때리지 않는다면, 가슴에 남겨지는 그 두근거림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철학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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