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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아니라 ‘삶’을 보려는 이유

'메시지가 안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전략이 잘 먹히는 이유

“김 대표 너무 멋있지 않냐?”
“왜?”
“자기가 사장인데, 인터뷰할 때 ‘임금은 올리고 근무 시간은 줄여야 한다’고 말하더라”
“으이구, 순진한 인간아! 김 대표 말만 그렇게 하고 자기 직원들은 월급 짜게 주고, 야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하데”
“정말? 와, 완전 쓰레기네”     


 거짓말을 하는 사람,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던가.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잘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말’이 아니라 ‘삶’을 보라고. 이런 이야기에 설득되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말’이 아니라 ‘삶’을 보려고 하는 걸까? ‘말’을 한 이가 그 ‘말’처럼 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 이런 태도는 우리네 삶에 도움이 되는 걸까?      


 정치권에는 ‘메시지가 안 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했던 말을 공격할 수 없다면, 그 말을 했던 사람(삶)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이 전략은 굉장히 효과적이며 파괴력이 있다. 예컨대, 검찰총장이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법을 어겼다면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치자. 민주적 공화국을 표방하는 국가에서 이 말은 너무나 옳은 말이다, 그래서 누구도 그 말 자체를 공격할 수 없다. 그럴 때 모종의 정치세력은 이렇게 반격한다. “검찰총장은 혼외자가 있는 부도덕한 인물이다!”      


 이런 정치공방을 보고 있는 우리네 정직한 속마음은 어떤가? ‘혼외자가 있는 부도덕한 인물이 법, 처벌 운운할 자격이 있나?’라는 마음이 슬며시 든다. 메신저가 공격당하는 사이에 메시지도 함께 증발해버리게 된다. 사실 생각해보면, ‘혼외자가 있는 것’(메신저)과 ‘대통령도 위법을 했다면 처벌받아야 한다’(메시지)는 것은 어떤 상관관계도 없다. 혼외자가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 위법을 했을 때도 아무 말 하지 않아야 하는 건가? 심지어 그가 검찰총장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네 마음은 이런 이성적 판단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바람이나 피는 인간이 대통령 흠결을 이야기할 자격이 돼?’라는 비합리적 판단에 너무 쉽게 휩쓸려 들어가 버린다. 이런 일 역시 ‘말’이 아니라 ‘삶’을 보려고 하기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는 왜 누군가의 ‘말’을 믿지 않고, 그 사람의 ‘삶’에서 그 ‘말’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걸까? 그건 그 옳은 말처럼 살아낼 담대함과 용기가 없기 때문일 테다. 우리 내면에 있는 그 비겁함 때문에 집요하게 ‘말’을 ‘삶’에서 확인하려는 것이다. 옳은 말대로 살아낼 강건함과 담대함이 없기에, 우리는 되묻게 되는 것이다. “넌 그렇게 살고 있어?”     


 우리는 먼저 나서고 싶지 않다. 손해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옳은 말이 옳은 말이라는 것은 안다. 그래서 옳은 말들, 예를 들면 ‘부당하고 부조리한 일에는 맞서 싸워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말대로 살아내려 하기보다, “너도 사장이 부당하게 야근 시켰을 때 아무 말도 못했잖아!” “너도 기부한 번 안 하고 살잖아!”라며 비겁한 자기정당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집요하게 ‘삶’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 비겁한 자기정당화의 다른 이름이다.        


 물론 안다. ‘말’과 ‘삶’의 개연성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까. 입만 열면 청렴을 떠들면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대통령을 생각해보라. 수평적 관계가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꼰대들을 생각해보라. ‘말’과 ‘삶’의 합일성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개연성조차 찾기 힘든 인간들을 볼 때 느껴지는 환멸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느꼈던가. 하지만 우리가 느낀 그 환멸은 그 대통령과 꼰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향해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 역시 우리가 뱉었던 ‘말’과 괴리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옳은 ‘말’은 그 자체로 이미 옳다. 그 말을 한 사람의 삶에서 확인할 필요 없다. 한국 노동 환경에서, 김 대표의 ‘임금은 올리고 근무 시간은 줄여야 한다’는 말은 옳다. 그가 그 말처럼 살든, 그렇지 않던 상관없이. 민주 공화국에서, 검찰총창의 ‘대통령도 잘못하면 처벌 받아야 한다’는 말은 옳다. 그가 바람을 피웠든 혼외자가 있든 상관없이. 당당한 삶, 주인된 삶을 원한다면, ‘삶’이 아니라 ‘말’ 자체만 보자. 누군가의 말이 옳다고 믿는다면 담대하고 강건하게 그 말처럼 살아내면 된다. 그 ‘말’이 옳다면 다른 이가 어찌 살던 개의치 말고 그 말처럼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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