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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이 없다면, '배움'도 없다

어떻게 배울 것인가? I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학창시절 나는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잘 배우지 못해서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어, 글쓰기, 운동 등등 그 대상이 무엇이건 각자의 배움에 대한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네들 역시 나와 별반 다른 것 같지 않다. 배움에 대한 욕망은 넘쳐나지만 대체로 잘 배우지 못한다. 그렇다. 우리는 대체로 잘 배우지 못한다. 심지어 나름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항상 질문한다. “어떻게 배워야 하지?” 집요하게 질문한 끝에 나름의 답을 발견하기도 한다. ‘끈기 있게 해야 한다’ ‘좋은 학원을 찾아가야 한다’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혼자서 스스로 해야 한다’ 등등. 이런 대답들은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인 걸까? 일견 옳은 답인 것 같지만 무언가 찜찜하다. 끈기 있게 해도, 좋은 학원을 찾아가도, 체계적으로 해도, 혼자서도 해도 영어, 글쓰기, 운동이 제자리걸음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제대로 답해보자. 배움을 주는 대상을 ‘맹신’ 해야 한다. 흔히, 잘 배우는 방법론으로 비판적 사고를 말한다. 선생이 되었든, 책이 되었든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아야 잘 배울 수 있다는 취지다. 이런 이야기보다 배움에 대해 왜곡하는 이야기도 없다. 다시 묻자. 우리는 왜 잘 배우지 못할까? 바로 ‘의심’(비판적 사고!) 때문 아니던가. ‘저 선생은 제대로 알고 있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게 옳은 걸까?’라는 의심 때문에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무엇인가를 잘 배우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종교적 믿음에 가까운 ‘맹신’이다. 종교인들이 ‘신’을 믿듯이 그 선생을, 그 책을 믿어야 한다. 그럴 때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배우기로 마음먹었다면, 의심하지 말고 맹신해야 한다. 나이든 사람보다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더 잘 배우는 것은 꼭 생물학적 원인 때문인 걸까? 나이든 사람은 무엇이든 자꾸 의심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맹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자꾸 의심하는 선생과 신처럼 맹신하는 선생, 둘 중 누구에게 더 잘 배울 수 있을지. 답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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