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배울 것인가? VI
어떤 사람이 더 잘 배우는가?
두 사람이 철학 수업을 듣고 있다. A는 삼십대 중반의 남자다. B는 이십대 초반의 여자다. A는 꽤 많은 지식이 있고, 경험도 많고, 이해력도 좋은 편이다. B는 상대적으로 지식도 적고, 경험도 적은 편이며 이해력도 좋지 못한 편이다. 여기서 질문. 누가 더 난해한 철학을 더 잘 배울까? 일반적으로는 A라고 답할 테다. 철학이라는 난해한 학문을 잘 배우기 위해서는 배경지식도, 나름의 경험도, 이해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정작 철학을 더 잘 흡수해서 잘 배워나간 건 B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더 잘 배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을 ‘어떤 사람이 더 잘 배우는가?’로 다시 묻게 된다. 배움에는 분명 사람마다 질적, 양적 차이가 있기에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더 잘 배우는지. 많은 배경지식, 배움을 자기 나름으로 해석할 경험, 그 배움 자체를 이해할 지적 능력은 무엇인가를 잘 배우는데 유리한 조건임에 분명하다. 책을 읽는 것도, 수업을 듣는 것도, 운동을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배움에 유리한 조건들이 배움의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오만이 배움을 가로 막는 이유
다시 A와 B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A는 그 유리한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왜 잘 배우지 못했을까? B는 그 불리한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잘 배우게 되었을까? 답은 ‘감동’에 있다. A는 감동하지 않았고, B는 감동했기 때문이다.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배움과 감동이 도대체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감동만큼 무엇인가를 잘 배울 수 있는 조건도 없다.
많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나름의 지적능력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네들의 새로운 배움 앞에서의 태도는 대체로 이렇다. ‘뭐 특별한 게 있겠어?’ 심지어 누군가의 탁월하고 기발한 통찰에 내심 놀라게 될 때도 ‘알고 보니 별 거 아니네’라며 그 감동들을 애써 누른다. 이것을 오만이라고 한다. 오만한 사람이 잘 배울 수 없는 본질적인 이유는, 오만한 사람은 잘 감동하지 못하기 (혹은 않기) 때문이다. 오만한 사람은 배움 앞에서 감동하지 못하거나 감동하지 않는다.
오만한 사람들은 감동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오만한 사람들이 가진 불필요한 승부욕은 감동을 막는 큰 장애물이다. 그 장애물 때문에 배움 역시 가로 막힌다. 그래서 오만한 사람은 누군가의 생각, 작품 앞에서 감동하며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기보다 없는 단점이라도 날조해서 비난하고 비판하려는 것이다. 그런 정신승리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치켜세우고 싶은 것이다. 감동을 교살하는 만큼 배움도 교살된다.
감동하면 잘 배울 수 있다.
B는 배움의 불리한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잘 배울 수 있었을까? 감동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의 지평이 넓혀주는 통찰이 나올 때면 “와, 대박,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며 감탄하며 감동했다. 그 감탄과 감동은 필연적으로 좋은 배움으로 귀결된다. 두 권의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한 권은 방학숙제를 하듯이 건조하게 읽는 책이고, 또 한권의 책은 침대 맡에서 울고 웃으며 읽었던 책이다. 우리는 어떤 책에서 더 잘 배우게 될까? 전자의 책은 읽자마자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후자의 책은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았지만 줄거리를 요약할 정도로 기억되지 않았던가.
감동은 그 어떤 조건보다 배움에서 중요한 조건이다. 배움에서 중요한 건 아이처럼 세상 모든 것 앞에서 감동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아! 우아!”를 연발하는 사람은 무엇이든 잘 배운다. 어른보다 아이가, 남자보다 여자가 새로운 것들을 더 잘 배우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어른보다 아이가, 남자보다 여자가 새로운 것 앞에서 더 잘 감탄하고 감동하는 까닭이다. 어른은, 남자는 새로운 배움 앞에서 감탄하고 감동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자존심 상해하기 때문에 잘 배울 수 없다.
‘나는 왜 잘 배우지 못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 배경지식, 경험, 지적능력을 문제 삼을 필요 없다. ‘나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감동하고 있는가?’를 문제 삼아야 한다. 배움, 그것은 지식에 관련된 문제도, 경험에 관련된 문제도, 지적 능력에 관련된 문제도 아니다. 감동과 감탄에 관련된 문제다. 울고, 웃고, 놀라라! 그럼 무엇이든 잘 배우게 된다. 그렇게 결코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조차 놀랄 만큼 잘 배워나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