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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카」1장은 읽을 필요가 없을까?

에티카 1장 워밍업 I

“에티카 1장은 기독교인 아니면 읽을 필요 없어요.” 


 철학을 쉽게 가르치는 것으로 이름을 알린 철학자가 언젠가 했던 말이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던 걸까? 에티카 1장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1장의 소제목은 ‘신에 관하여’다. 말 그대로 1장은 신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스피노자가 살았던 시대는 중세를 막 벗어난 그래서 여전히 신이 중심인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스피노자는 자신의 저서를 시작하면서 당대를 지배했던 신에 대한 인식을 해체하려했다.      


 앞서 말한 대중 철학자가 ‘1장은 읽을 필요 없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 지금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신을 믿지 않는 시대다. 그러니 해체해야 할 신에 대한 인식도 없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의 1장에서 촘촘하고 집요한 논증 방식으로 전통적인 신에 대한 인식을 해체하려 했는데, 그 대중 철학자가 보기에 그 작업이 우리 시대에는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일 테다. 일견 동의 되는 부분이 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철학 텍스트를 읽어나간다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작업이다. 늘 바삐 사는 사람들에게 읽어야 할 글을 줄여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에티카를 읽을 때는 그런 호의는 거절하는 게 좋다. 그 이유는 에티카의 원제목을 통해 알 수 있다. 에티카의 원제목은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Ethica in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이다. 스피노자는 명제 마다 번호를 붙여 논리적 하나씩 증명해나가는 방식의 글쓰기를 택했다. 예컨대, 정의 1, 2, 3의 내용을 통해 4를 논증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앞의 내용을 모르면 뒤의 내용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에티카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1장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형식적인 측면, 기하학적으로 논증하는 형식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1장은 결코 건너뛸 수 없다. 에티카는 1장부터 5장까지 논리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까닭이다. 1장을 건너뛰면 누군가 요약하거나 해설한 에티카를 읽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에티카 그 자체를 자신의 눈으로 읽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에티카는 ‘기하학적으로 논증된 윤리학’이니까. 에티카를 읽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일체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스피노자의 호흡과 리듬을 따라 그의 논증방법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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