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삶'이 '부러운 삶'이 될 때까지
우리의 정신분열을 조장하는 돈
돈은 일정정도 우리를 정신분열로 몰아넣는다. 돈을 벌고 싶지만 정작 그 돈을 버는 과정에서 우리가 옳다고 믿는 훌륭한 삶을 살아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유년시절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 중에 돈에 대해서 과도하게 집착하고 또 매사에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 많다. 그들은 종종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돈 벌려면 어쩔 수 없는 거야!’ ‘다른 사람 도와주면서 언제 돈을 벌어!’, ‘나쁜 짓 안하고 돈 번 사람이 어디 있어!’라며 자신의 삶에 대해서 거칠게 변호하곤 한다. 이런 사람들은 일정 정도 정신분열을 겪고 있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지만 정작 부자가 존경할 만한 존재는 아니라는 자기분열 말이다.
실제로 북미나 유럽 사람들은 이런 자기분열이 한국보다 훨씬 덜한 편이다. 공정한 경쟁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고, 불법과 편법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로 시야를 넓혀 보면 정직하고 바람직한 부자의 모델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그러니 그런 정직한 부자의 모델이 아주 흔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들이 겪는 자기분열이 현저히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거부감을 가질 이유는 없으니까. 반면 한국에서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언제나 암묵적인 선택을 강요받는다. ‘정직하게 살래? 아니면 부자가 될래?’라는 정신병적 자기분열을 일으키게 되는 선택을.
참 서글픈 일이다. 지금 우리는 부러워하는 삶과 존경하는 삶이 일치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직장인들이 사장에게 고개를 숙여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이유는 사장을 진심으로 존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야심 넘치는 직장인들이 사장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이유가 언젠가 자신도 아무런 영혼도 진심도 없는 인사일지라도 기어코 그것을 받고 말겠다는 서글픈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진심과 영혼을 팔고 때로는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행복해질까?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기어코 임원이 되어 직원들의 영혼도 진심도 없는 인사를 받게 되면 행복해질까? 글쎄 잘 모르겠다.
돈을 많이 벌려고 할 때, 내면에 각인된 부자에 대한 이중적 잣대로 인해 일정 정도 정신병적 자기분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부러움의 대상’과 ‘혐오의 대상’이 일치될 때 우리는 여지없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돈 때문에 불행한 이유는 돈이 없는 궁핍한 생활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돈이라는 것이 우리를 어찌할 수 없는 자기분열로 몰아넣기 때문이기도 하다. 존경하는 삶과 부러워하는 삶이 유리될 때, 혐오하는 삶과 부러워하는 삶이 일치될 때, 그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존경하지 않는 삶을 부러워하는 이의 종착역에 행복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성공을 바란다. 그렇다면 성공이 무엇일까? 대부분은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성공의 제 1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자 하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불행한 자기분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정직한 부자, 존경받는 부자가 되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쉽지 않는 문제다. 2012년, 정직한 부자의 아이콘인 ‘안철수’가 단숨에 대선주자급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직한 부자가 드물고 또 그런 삶을 살아내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이 자기분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공의 기준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성공이라는 것을 ‘자신이 옳다고 믿고, 존경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어떨까? 성공의 기준이 돈이 아니라 자신만의 ‘긍정적 이상향’의 삶을 살아냄에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분열도 겪지 않을 테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있다. 부러워하는 삶을 존경하려고 삶을 날조하지 말고, 존경하는 삶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게 되면 삶은 자연스레 행복해질 것이다. 쉽게 말해, 부자(부러워하는 대상)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할만한 사람을 부자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대기업 임원들 중 진심으로 사장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조금만 살펴보아도 그 사장은 탈세, 편법, 불법은 물론이고 수시로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는 등 존경할만한 일말의 건덕지도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장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부모를 대하듯 진심으로 사장을 존경하는 임원들을 볼 수 있다. 그 임원은 사장이 가진 돈, 권력, 유명세를 부러워하고 그것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부러운 삶에 도달하기 위해 기어코 그 천박스럽기까지 한 사장을 존경스러운 인물이라고 날조해버린 게다. 이 얼마나 남루하고 안타까운 삶이란 말인가.
돈? 조금 못 벌면 어떤가. 부자? 못 되면 또 어떤가. 조금 가난하게 살면 어떤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존경하는 삶을 부정한 대가로 돈을 벌고 부자가 되는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게 성공이라면, 적어도 나는 성공하고 싶지 않다. 성공한 삶이란 여러 가지 삶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존경하는 삶을 자신의 인생에서 관철시켜내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정신분열 대신 자신의 삶을 긍정하게 되는 굳건한 자존감과 행복을 얻게 된다.
부러운 삶 vs 존경하는 삶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 많은 ‘부러운 삶’을 살기 위해 의미 있는 ‘존경하는 삶’을 부정하며 사느라 정신분열에 내몰리고 있다. 아니 차라리 그런 정신분열이라도 겪고 있다면 마지막 희망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돈만 많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천박스럽지만 부럽기는 한 부자의 삶을 향해 내달리는 것에 일말에 죄책감이나 자기분열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돈만 있으면 장땡이야!’라고 외치며 사는 것 같다.
이제 우리, 진짜 성공은 ‘부러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에 있다고 내면에 각인시키고 또 각인시키자. 돈보다 소중한 가치들이 많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끼자. 우리가 부자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유 역시 사실은 그들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 아니었던가? 하지만 진짜 행복은 부자가 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존경하고 옳다고 믿는 삶을 살아내는 데에 있다.
솔직히 말하자. 나는 여전히 호화롭고 넓은 집에 사는 삶이 부럽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신이 가고 싶은 나라로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돈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 정직하게 그것이 부러운 삶이다. 하지만 조금 가난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용기 있는 삶을 존경한다. 아이들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대기업을 떠나 작은 기업으로 옮겨 간 사람을 존경한다. 자신도 궁핍하지만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을 도와주는 삶을 존경한다. 나는 그런 삶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제 부러운 삶을 향해 내달리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존경하는 삶으로 한 걸음씩이지만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니 ‘존경하는 삶’이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삶’으로 내면에 자리 잡도록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호화로운 집, 비싼 외제 차, 많은 돈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예전만큼 강렬하지 않다. 오히려 조금 가난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너무나 부럽다. 나는 ‘삼성’의 ‘이건희’보다 ‘서칭 포 슈가맨’의 ‘로드리게즈’가 더 부럽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행복한 삶으로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존경하는 삶을 살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건 강요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부러운 삶을 억지스럽게 존경하려는 날조된 삶 대신 존경하는 삶을 부러워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자고 말이다. 이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돈이 충분치 않아도 혹은 조금 가난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도저히 찾을 수 없다면 내게 연락하시라. 소개시켜줄 테니.
그렇게 존경할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찾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누구보다 멋있고 근사한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가 되면, 누가 ‘부러워하는 삶 대신 존경하는 삶을 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리 살게 될 게다. 세상에 행복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테니까. 우리, 그렇게 존경하는 삶을 살아내자. 그렇게 근사하고 멋있게 살자. 행복하게 살자.
아니,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을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삶을 살자. ‘존경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존경하는 삶’을 부러워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자! 이것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