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스피노자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신=실체=자기원인=무한=자연

스피노자의 신 인식을 가리켜 흔히, 범신론汎神論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도 알 수 있다. 스피노자의 신은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은 어디에나凡 있으며 세상만물을 만들어내는 신神인 까닭이다. 스피노자는 ‘유한자가 신’이 되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유한자=신’인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유한자들은 신(자연)의 속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자연’을 두 가지 자연,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으로 구분한다.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 자체 안에서 이미 존재하며 그 자체를 통하여 파악되는 것, 또는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실체의 속성들, 즉 자유로운 원인으로서 고찰되는 한에 있어서의 신이라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 1부, 정리 29, 주석)     


 능산적 자연은 신(실체=자기원인)으로서의 자연이다. 이 능산적 자연은 우리 눈에 보이는 나무, 꽃, 과일 같은 자연이 아니라, 그 모든 자연물들을 만들어내는 어떤 힘으로서의 자연이다. 스피노자는 이 능산적 자연이 진짜 신이며, ‘기독교식 신’(초월적 원인)은 이 ‘자연으로서 신’(내재적 원인)을 오해한 것이라고 보았다. 일부 사람들은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무신론이라 말하곤 하는데, 엄밀히 말해 범신론은 무신론이 아니다. 초월적 원인으로서의 신 대신 내재적 원인으로 신, 즉 자연이라는 신을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을 나는,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혹은 신의 각 속성의 필연성으로부터 생겨나는 모든 것, 즉 신 안에 존재하며 신 없이 존재할 수도 파악될 수도 없는 것들로 고찰되는 한 에 있어서의 신의 속성의 모든 양태들이라고 이해한다. (제 1부, 정리 29, 주석)


 소산적 자연은 양태로서의 자연이다. 양태란 실체(신)의 변용이다. 그래서 나무, 꽃, 과일, 새, 벌, 인간과 같은 자연물들은 단순한 초월적 신의 피조물이 아니다. 그건 실체(신=자연=내재적 원인)의 변용이기에 신의 속성 중 일부를 가진다. 신은 창조할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런 측면에서 능산적 자연도 신이고, 소산적 자연도 신이다. ‘능산적 자연’으로서의 신이 ‘소산적 자연’(나무, 꽃, 새, 벌)을 창조한다면, ‘소산적 자연’ 역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창조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과일을, 꽃은 향기를, 새는 새끼 새를, 벌은 꿀을 창조하지 않던가.     


 제 1부의 결론은 ‘신=실체=자기원인=무한=자연’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신’은 유일한 ‘실체’이고, ‘자기원인’이며 ‘무한’하다. ‘신은 유일하지만 무한하다’는 말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신이 곧 자연이기에 전혀 모순되지 않게 된다. 자연에는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이 있는데, 능산적 자연은 유일한 ‘실체’이지만 이는 소산적 자연이라는 ‘무한’한 ‘양태’로 끊임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은 유일한 ‘실체’이면서 ‘자기원인’인 동시에 ‘무한’한 ‘자연’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에티카」 제 1부의 치밀하고 기발한 스피노자의 사유는 혁명적이지만 서막에 불과하다. 지금 스피노자는 더 큰 사유적 혁명에 기초를 다지고 있을 뿐이다. 스피노자의  이런 혁명적 사유의 시작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작가의 이전글 스피노자가 다시 맞춘 '신'이라는 퍼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