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위한 인간이 아닌, 인간을 위한 신을 위하여
“이제야, 나는 신, 즉 영원하고 무한한 절대자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에 관한 설명으로 옮겨나가고자 한다.” (제 2부)
스피노자는 2장, ‘정신의 본성 및 기원에 대하여’을 위와 같이 시작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는 복습이다. 2장을 시작하며, 1장에서 이미 밝힌 신에 대해서 상기시키고 있다. 즉, 신은 “영원하고 무한한 절대자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되는” 바로 ‘자연’ 그 자체라는 결론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있다. 두 번째는 구체적 논의 주제에 관한 것이다. 1장이 오해된 신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었다면, 2장은 그 바로잡은 신(자연)에 대해 논의하려고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신에 대해서는 논의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무한한 것이 무한한 방식으로 생기지 않으면 안 된다.” (제 1부, 정리16) 는 사실을 이미 밝혔기 때문이다. 즉, 신(자연)은 무한한 것이 무한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까닭에 신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무한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다 논의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여기서 스피노자가 진짜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 속내를 드러낸다,
“여기서는 다만 인간의 정신과 그것의 최고의 행복에 대한 인식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게 하는 것들만 다룰 것이다.” (제 2부)
스피노자는 신의 본성에 의해서 무한한 것이 나타남으로 그 모든 것을 다 논의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인간의 정신과 그 정신이 최고의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들만 다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스피노자가 1장에서 왜 ‘신의 존재’, 즉 ‘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집요하게 논증하려고 했었는지 그 속내를 알 수 있다. 스피노자는 신을 통하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행복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신 자체를 긍정하려 했다기보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2장의 제목이 ‘정신의 본성 및 기원에 대하여’이다. 인간과 인간의 행복은 결국 인간 ‘정신의 본성 및 기원에 대해여’ 논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스피노자는 지금 ‘신’으로부터 시작해 ‘인간'에게 다가서려는 야심찬 기획을 시작하고 있다. 신을 위한 인간이 아닌, 인간을 위한 신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