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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물체'와 '관념'

신은  물체이면서 관념이다.

물체란 신이 연정된 사물로 고찰되는 한에 있어서 신의 본질을 일정하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양태라고 나는 이해한다. (제2부, 정의 1)

  

 스피노자는 물체, 즉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질적 존재(인간, 개, 물, 컵 등등)는 신이 ‘연장’extension된 사물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연장은 망치, 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었다는 의미인 연장이다. 철학에서는 ‘연장’은 ‘사유’(생각)와 짝 개념으로 사용된다. 사유가 공간을 차지하는 물질성이 없는 반면, 연장은 연장되었기에 공간을 차지하는 물질성을 갖는다.

    

 스피노자는 세상의 모든 물체는 신의 연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이 연장(확장)되어 물체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물체는 양태다. 본질인 실체가 변용되어 나타나는 양태. 신의 본질(실체)이 일정하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표현된 양태가 물체다. 쉽게 말해, 세상에 물질을 갖고 있는 물체들은 모두 신이 변형(확장)된 존재들이란 의미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장은 신의 속성이다또는 신은 연장된 것이다. (제 2정리 2) 



정신은 사유하는 것이므로, 정신이 형성하는 정신의 개념을 나는 관념으로 이해한다. (제 2부, 정의 2)     


 물체, 즉 물질에 관해 정의한 뒤 이제 사유, 즉 정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관념’에 대해서 정의하는데, 이 관념을 ‘정신이 형성하는 정신의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얼핏 난해해보이지만 별게 없다. 스피노자는 정신 즉 생각하는 것에 관련해 ‘지각’perception과 ‘개념’concept을 구분하고 있다. 지각은 “정신이 대상으로부터 작용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면, 개념은 “정신의 능동을 표현하는 것”이다. 


 연필은 지각이고, 필기구는 개념이다. 실제 연필을 보고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지각’이다. 이는 정신이 대상(연필)으로부터 작용을 받는 것이니까. 하지만 연필, 지우개, 볼펜 등등을 추상화하여 ‘필기구’라는 것을 사유하면 그것은 개념이다. 필기구라는 개념화가 이뤄지면, 연필·지우개·볼펜뿐만 아니라 노트북태블릿 등 쓸 수 있는 다른 어떤 형태들까지 정신이 능동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념은 “정신의 능동을 표현하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관념을 ‘정신이 형성하는 정신의 개념’이라고 말한 이유를 이제 알 수 있다. 정신(사유)이 능동적으로 확장하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관념’이다. 스피노자는 이어서 타당한 관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의한다. 타당한 관념이란 대상과의 관계를 떠나서 그 자체로 고찰되는 한에 있어서, 참다운 관념의 모든 특성들, 혹은 내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관념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제 2부, 정의 4)


 ‘필기구’라는 관념이 있다고 해보자. 이 관념이 타당한 관념이 되려면, ‘필기구’라는 관념의 특성들, 내적인 특징들(뭔가를 기록할 수 있는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뭔가를 기록할 수 있는 특성 혹은 특징 안에, 노트북이나 태블릿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 필기구라는 관념은 타당한 관념이 아닌 것이다. 타당한 관념이란 참다운 관념의 ‘모든’ 특성들, 혹은 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관념이다.  스피노자는 이런 사유는 신의 속성이고, 동시에 신은 사유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사유는 신의 속성이다. 또는 신은 사유하는 것이다.” (제 2부, 정리 1)

 신은 연장되지만, 동시에 사유하는 것이다. 결국 스피노자는 신은 물체(물질)이면서 관념(생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존재들과 그것에 관련된 관념들은 모두 신에 그 자체이거나 혹은 그런 신에 의해 파생된 것들이다. 이런 스피노자의 생각은 낯설지 않다. 스피노자의 '범신론' 즉 신은 자연이기에 어디에나 있다는 주장을 생각해보라. 신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사유이기에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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