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정신적 키가 한뼘씩 자랐기를
무더웠던 7월에 시작했어요. 입김이 불리는 겨울의 길목에서 끝이 났어요. 데카르트부터 시작했던 17주 간에 철학사 여행. 때로 힘들었고, 때로 지치기도 했어요. 하지만 긴 수업이 끝나고 나니, 수업을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졌어요. 매주 그 장소에서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던 시간, 저는 분명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저는 또 글을 써나가고 다시 수업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또 미안해요.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셨던 것만큼 저는 여러분을 사랑해드렸을까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에요. 분명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들의 이야기에 답해드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수업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후회가 될 때도 있었어요.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기보다 때로 나의 생각과 철학을 강요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어김없이 후회가 들었지요.
저는 이제 알고 있어요. 철학의 본령도 삶의 본령도 모두 사랑이라는 걸요. 그래서 사랑하는 만큼 이야기하고, 이야기했던 만큼 사랑해야 되는 거죠. 하지만 수업이라는 것이 때로 그 균형을 무너뜨릴 때가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이야기하게 되고, 이야기했던 만큼 사랑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죠. 아마 그때 저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었을 거예요.
혹여, 제 이야기에 상처 받으신 분들이 있다면, 때늦었지만 사과드리고 싶어요. 아직 미숙한 선생이라 그랬을 거예요. 돌아보니, 여러분이 제게 무엇인가를 배운 게 아니라, 어쩌면 제가 여러분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 것 같기도 해요. 17주의 수업을 통해 제가 정신적 키가 또 한 뼘 자란 것 같기도 해요. 저만큼 여러분의 정신적 키도 자랐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2017년, 7월부터 11월까지, 17주의 뜨거웠던 밤, 잊지 못할 거예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담으며 이탁오 선생의 이야기를 다시 되새겨 봅니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