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통보다 주짓수가 좋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약 10년 전쯤, 첫눈에 반하게 되어 지금까지 하고 있는 운동이 있다. 주짓수다. 중간에 취업을 하면서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었는데, 그 기간이 아쉬워서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운동에서 조차 열정을 보이지 못하는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서일까? 일을 그만둔 이후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체육관에 나가 주짓수를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단연코 여러 상대와 스파링을 하는 것이다.
주짓수 스파링이라는 게 남자들의 승부욕 때문인지 하다보면 격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나도 본의 아니게 무리를 하게 될 때면 가끔 왼쪽 무릎에 이상이 오곤 한다. 말하자면 인대가 원래 있어야할 위치를 벗어나 어딘가에 걸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릎 인대가 찌릿찌릿하면서 다리가 펴지지 않게 된다.
처음에 이런 증상을 겪었을 땐 무척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다보니 이제는 요령이 생겨 무릎을 몇 번 툭툭 털면 괜찮아 진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스파링을 시작한다. 주짓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리해서 스파링 하다가 무릎 인대가 찢어져 깁스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 다쳤던 부위가 아직까지 말썽인 듯하다. 병원에 가면 분명 운동을 쉬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미련한 나는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계속 주짓수를 한다.
이처럼 가끔 무릎이 말썽일 때면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 “부상 때문에 주짓수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는 내 몸이 다치는 것 보다 주짓수를 못하게 되는 것이 더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내게 느껴지는 고통보다 주짓수가 먼저인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릎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끝까지 마치게 될 때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아... 나는 참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구나...”
사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나에게 피해가 오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어쩌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화관에서 잡음을 내는 사람 때문에 방해 받는다거나,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보다 먼저 타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게 될 때면 표정관리가 안될 정도로 그들을 경멸했었다. 누군가는 내게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심각한 문제는 내가 사랑이라고 떠들었던 그런 관계에서 조차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다. 같이 여행을 갔는데 친구 혹은 여자 친구가 아파 여행에 차질이 생길 때면 위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랬다. 당시 쓰레기 같은 사람이 되기싫어 애써 말은 감췄지만 나의 비언어적 표현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결국 지독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아주 작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그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 것이다. 슬프지만 이렇게 이기심의 끝자락에 서있는 사람이, 사랑의 ㅅ자도 모르는 사람이 바로 나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적어도 나는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나는 변하고 싶고, 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그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나에게 고통보다 주짓수가 먼저인 것처럼, 고통보다 사람이 먼저인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이러한 말이 여전히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멋지게 미련해지고 싶다. 그 고통이 지독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고통이든, 누군가에게서 받은 상처에서 비롯된 고통이든, 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에서 비롯된 고통이든 간에 말이다.
이종혁 (MC 들뢰즈)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 (라고 본인은 한테 설득 중)
- 우울증 핑계대고 퇴사해서, 놀고 먹고 있음
- 놀고 먹다 지쳐, 랩을 만들고 주짓수를 하고 있음.
- 창의적인 인간임(창의성은 놀 때 발현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 중)
- 아직은 방황하고 있지만, 계속 그럴 같음. (다행히 아버지가 돈이 좀 있음)
- 철학을 삶으로 받아들인다고 쌩똥을 싸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