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의 동정심 수업을 듣고
나는 오랫동안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세월호에 희생당한 아이들을 보고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세월호 모금에 참여하고 세월호 다큐도 봤지만, 내가 이 참사에 100% 감정이입을 못하고 있다는 거리감 때문에 늘 괴로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세월호 참사가 슬프지 않았다. 슬퍼해야 한다고 의무감을 느꼈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내 감정은 박근혜를 향해 있었다. 나는 박근혜가 졸라 싫었다. 그 원형은 내가 평생동안 지긋지긋하게 애증했던 엄마에게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세월호 참사가 슬프지 않았지만, 박근혜의 무능에는 분노할 수 있었다. 그 감정은 진짜였다. 그래서 박근혜 탄핵 때는 순도 높은 분노를 체험했다.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 점수를 채우기 위해 장애아동 병원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장애인을 지근 거리에서 처음 봤다. 그때까지 장애인은 나에게 티비 속에서 비추어지는 연예인같은 존재였다. 어려서부터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많았다고 스스로 기만했던) 나는 당연히 장애인의 인권에도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장애인을 마주한 순간, 내가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압도적인 불편함.
장애인 수십명이 생활하는 그 공간을 빨리 뜨고 싶어서 시계만 쳐다봤다. 4살 밖에 되지 않은 정신지체 아이가 나에게 안기려고 할때 나는 그 아이의 두개밖에 없는 손가락이 신경쓰였다. 그 공간에서 나는 냄새가 싫었고, 아이들이 밥을 먹으면서 흘린 밥풀 때문에 내 양말이 끈적해지는 게 싫었다. 거의 스무살이 다된 정신지체 남성이 목욕을 하느라 벌거벗었을 때 나의 혐오감은 극에 달했다.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빨리 봉사활동 점수를 채우고 다시는 그 공간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들을 불편해하는 내 자신이 불편했다. 그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다. 최근에 외할머니가 입원해계시는 요양병원에 갔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수십명의 노인들이 죽을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공간. 그 공간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거멓게 드리워져 있었다. 쇠약해진 외할머니를 보면서 연민의 감정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그 우울한 공간을 빨리 뜨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내 푸릇한 젊음이 죽음의 그림자에 압사당하는 느낌이 싫었다.
나는 세월호의 아이들에게도, 장애아동에게도, 노인들에게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 재수없는 소리지만, 금수저로 자라 단 한순간도 가난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가난의 처절함을 모른다. 나에게 가난은 미디어 속 이야기이다. 쌤이 이재용은 가난한 사람에게 결코 동정심을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건 나에게 오래도록 컴플렉스였다. 웃기는 소리지만 나는 얼마전까지 금수저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내 인생의 협소한 경험만큼, 내가 동정심을 느끼는 대상은 협소하다. 학업스트레스를 받는 청소년들, 부모가 무서워 압사당할 것 같은 사람들, 사업하다 망한 사람들, 스타트업 업계에서 야수가 되어 삶이 잠식당한 사람들, 뭘 해야될지 잘 모르겠는 회사 대표들,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걸린 사람들, 못생긴 외모로 스트레스 받는 여성들, 실연당한 사람, 연인이 바람펴서 남겨진 사람, 임신이 무서운 여자들. 딱 여기까지. 정말 협소하다. 하지만 초라하진 않다.
초라한 건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못한다고 자책하던 내 자신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껴야한다고 생각했다. 느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미웠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같은 게 아니었다. 자본주의교의 독실한 신도였던 나는 직감적으로 안 거다. 남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왜냐면 현대인은 모두 타자로부터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으니까. 그래서 괴로웠던 거다. 죽어도 남에게 진심으로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자본주의에서 결코 주체적인 위치에 서지 못한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동정심을 이리도 불순한 관점으로 바라봤다. 기독교인들이 '봉사(선함)'를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수단으로 생각하듯, 나는 그것을 요즘 현대사회에서 성공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 수업을 듣고 동정심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현재 스코어, 내 삶이 협소한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걸 자책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내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내가 진짜 동정심을 느낄 수 있는 대상들에게 동정심에 기반한 사랑을 베풀면 되는 것이다. 협소하지만, 그건 진짜 '선'이 맞다. 내가 마더 테레사가 아닌데 왜 자꾸 많은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껴야한다고 생각하나. 그건 오만이다. 그건 동정심을 통해 내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이같은 마음일 뿐이다. 협소한 대상이지만, 진심으로 동정심을 느끼는 대상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게 언젠가 그 지점에 있었던, 과거의 김혜원들을 위로하는 방법일 테니까.
- 철학흥신소 소속 작가(인 이유는 우울증
치료차, 철학흥신소 왔다 낚였음.)
- 졸라 좋은 대학 나왔음. (지금 생각하는 거기보다 더 좋은 데임. 외국 대학임. 영어는 생각보다 못함.)
- 종교 : 자본주의교. (개종 거의 다왔음. 오, 주여!)
- 당근 졸라, 금수저임.
- 금수저라는 말 듣기 싫어, 맨땅에 헤딩하듯 사업했음 (당근, 졸라 망함)
- 졸라 망하고, 졸라 우울증 왔음
- 지금 철들고 있는 중 (자기가 졸라 대단한 사람인줄 았았는데, 졸라 망하고 정신차리고 있음)
- 요즘 글쓰는데 재미 붙여서 졸라 쓰고 있음.
- 철학흥신소 생체실험 대상 (한 사람이 얼마나 단기간에 변할수 있는지 증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