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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상장.

아들이 상장을 받아왔다. 두 개나. 나는 학창실절을 통 털어, 개근상 외에 상장을 받은 적이 없다. 딱 하나 받은 상장이 있지만 그건 내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누이가 대신 그려준 그림 덕분이었으니까. 아들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애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 같아서. 늦은 밤, 집에 들어왔을 때, 아들은 자지 않고 있었다. 내 방으로 들어왔다. “너 오늘 상 받았더라. 두 개나” 아들은 “어”라고 짧게 대답하며 내 눈치를 봤다.      


 아들은 이곳저곳에서 상 받은 것을 내게 자랑하지 않는다. 아니 눈치를 본다. 단 한 번도 칭찬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되려, “뭐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라고 애써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마 아들은 ‘아버지는 내가 상 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할 테다. 나라고, 그것이 왜 좋지 않을까? 자식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으니까. 한 없이 대견하고 고맙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된다. 너무 빨리 세상의 칭찬과 인정에 휩쓸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찾지 못하게 될까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학창시절, 공부에 매달렸다. 그것은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높은 점수가 적힌 성적을 받아왔을 때, 평소에는 그리도 시큰둥했던 부모가 밝은 미소로 칭찬해주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 돈에 매달렸다. 그것은 돈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높은 연봉이  적힌 통장을 받아왔을 때, 그리도 시큰둥했던 부모가 밝은 미소로 인정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긴 시간,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에서 멀어져갔다. 아이를 키우며, 나를, 그리고 나의 부모를 되돌아본다. 높은 점수와 연봉이 적힌 성적과 통장을 받아왔을 때 부모가 시큰둥했다면 어땠을까? 분명 서운했을 테다. 하지만 그 서운함으로 인해 나는 조금 더 빨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내 욕망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을 테다. 칭찬과 인정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고, 무관심과 시큰둥함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나는 아들이 세상이 정한 기준에 도달하는 것에 대해 칭찬해주고 싶지 않다. 그것이 아이를 불행하게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대신 아이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가려할 때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싶다. 그것이 아이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것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 역시 그리 강단 있는 애비는 못되는 모양이다. 늦은 밤, 못내 서운해 하는 아들을 안아주며 이렇게 말해주었으니까 말이다.    

  

 “선빈아, 아빠는 선빈이가 상을 받는 것도 좋아. 그런데 상을 받으려고 책을 읽고 공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선빈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냥 신나게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 아빠는 선빈이가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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