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꽤 긴 시간동안 머물렀던 집필실을 뺐다.

꽤 고된 이사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득히 쌓여 있던 책을 들어내자 집필실이 휑해졌다.

텅 빈 집필실만큼 마음도 텅 빈 것 같았다.

추억과 익숙함을 이제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머물렀던 그 공간에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깊게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허했다. 아팠다.

그토록 위로 받았던 곳에 뿌리내리 못한 자신을 발견했기에.


텅 빈 집필실을 보며 코끝이 찡했던 건

오랜 시간 함께한 소중한 존재에게,

깊게 뿌리 내리지 못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왜 아픈 일은 겹쳐오는 걸까?

추억과 익숙함이 깃든 지하철역에서

따뜻한 커피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또 코끝이 찡했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도,

새로운 추억을 쌓아도,

그것들이 익숙해져도,

쉬이 마음이 가득찰 것 같지 않다.


꽤 긴 시간 나는 텅 빈 마음을 감당해야 할 것 같다.

꽤 긴 시간 아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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