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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되지 않은 글'의 아름다움

'글쓰기에 대한 글'의 무용함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글이 너무 많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은 얼핏 보아도 수십 종은 넘어 보인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이는 어찌 보면 황당한 일이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글쓰기라니.      


 글은 삶이다. 이 명제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좋은 삶을 살아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글은 일단 써내야 한다는 것. 삶이 언제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던가. 삶은 들이닥친다. 좋은 삶이건 아니건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살아내는 것이다. 좋은 삶은 일단 살아낸 다음에 겨우 찾아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글도 그렇다. 글은 들이닥친다. 들이닥친 글들을 일단 써야 할 때가 있다. 좋은 글이건 아니건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써내는 것이다. 좋은 글은 일단 써낸 다음에 겨우 찾아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것이 글쓰기에 대한 글들이 무용한 이유다. 일단 써내야 할 때 ‘글쓰기에 대한 글’로 도망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글쓰기 전에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라는 말 뒤로 도망치는 사람은 너무 흔하지 않은가.


'정돈된 글'의 유해함


'글쓰기에 대한 글'이 무용하기만 할까? 심지어 유해하다. 한국에서 글을 가장 잘 쓴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쓴, 그래서 가장 많이 팔린 글쓰기 책조차 유해한 면이 있다. 거의 모든 글쓰기관련 책에서 진리처럼 떠받드는 명제가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좋은 글이 어떤 글인가? 논리적이든, 감성적이든, 잘 정돈된 글이다. 앞뒤가 논리적으로 잘 연결된 글. 감정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글. 이런 글들은 분명 잘 정돈된 글이다.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쓴 이들 중, 확신을 주고 싶어 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돈된 글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다’ 또 믿음을 주고 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돈된 글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정돈된 글을 읽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어느 쪽이든 결국 좋은 글을 쓸려면 정돈된 글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글쓰기에 대한 심각한 오해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돈된 글’을 읽으면 오히려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글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처음부터 논리적, 감성적으로 잘 정돈된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글은 때로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고, 또 감정이 넘치거나 모자라다. 그때 '정돈된 글'들은 우리에게 글을 쓰지 말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들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성공하고 성숙한 이들의 '정돈된 삶'을 보며 내 삶이 더욱 초라해져서 당장 오늘을 잘 살아내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정돈되지 않은 글'의 아름다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정돈되지 않은 글’을 읽어야 한다. 이는 남루한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기만적 자신감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정돈되지 않은 글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첫걸음이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고, 감정적으로 과하거나 메마른 글들이 있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이들은 그런 투박하고 거친 글들을 불편해한다. ‘정돈된 글’이 아니니까. 자신은 절대 저 따위 글을 쓰고 싶지 않으니까.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글 쓰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수업이다. 그저 써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뿐이다. 그곳에는 정돈되지 않은 글들이 난무한다. 논리는 개나 줘버리라고 쓴 글들이 널려 있다. 마음 속 깊은 곳의 원색적인 감정들, 기쁨, 쾌락, 증오, 분노들이 여과 없이 쏟아진 글들이 널려 있다. 그 글들은 정돈되지 않았다. 투박하고 거칠다. 하지만 아름답다. 사람들이 놀러오지 않는 산 중턱에 이러 저리 널려 있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들꽃처럼.      



 글쓰기 수업에는 정돈되지 않은 글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이들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네들은 점점 더 정돈된 글을 써내고 있다. 들이닥친 삶을 살아내는 것처럼, 글을 써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써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정돈되지 않은 글도 너무나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도 지금 당장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게 표현할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돈되지 않은 글을 써낸 사람들이 있다. 정돈되지 않은 글을 써내면 삶이 정돈된다. 그것이 그들이 점점 더 정돈된 글을 써낼 수 있는 이유다. 글은 삶이니까. 논리적 짜임새가 있고, 감정의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정돈된 글은 분명 좋은 글이다. 그 좋은 글은 ‘정돈된 글’로 시작되지 않는다. ‘정돈되지 않는 글’로 시작된다. 정돈되지 않는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좋은 삶도, 좋은 글도 오직 사랑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인가 보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의 글만이 정돈되지 않아도 아름다워 보이니까 말이다. 거칠고 투박한 연애편지에서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거칠고 투박한 부모님의 편지에서 눈물이 날만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읽던 책을 놓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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