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칼럼]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I

부모에 관한 글쓰기에 관하여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이 대상에 투자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그 대상은 크게 ‘나’와 ‘타인’으로 나뉜다. 정신분석에서는 그러한 에너지를 ‘자아 리비도’와 ‘대상 리비도’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 타인에게 향하는 에너지는 대상 리비도이고 나에게 향하는 에너지는 자아 리비도다. 리비도는 한정적이기에 자아 리비도가 커지면 대상 리비도는 줄어들게 된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지나치게 미워하면 그 외 다른 사람을 신경 쓰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한 사람에게 대상 리비도가 몰려 있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어렵다.”에 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르시스트'라는 말을 쉽게 접하고 사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라면 나르시스트는 자아 리비도만 존재하는 상태를 뜻한다. 타인에게 가야 할 대상 리비도가 되돌아오지 않아 자아 리비도로 바뀐 상태다. 하지만 정신분석에서는 그러한 상태는 편집증, 정신분열증과 같이 정신병적 주체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이야기한다. 보통의 성인들, 즉 신경증자들은 완전한 나르시스트가 될 수 없다. 대게는 자아 리비도와 대상 리비도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나르시스트처럼 보이는 사람은 너무 많지 않은가. 심지어 스스로를 나르시스트가 아닌가 의심하는 경우도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의 세계에서는 타인은 배제되었고 오직 나만이 존재했다. 마치 자의식 과잉 상태인 유아처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나였다. 한 번은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 그녀가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때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감정은 짜증이었다. 그녀로 인해 내가 피해 받는 상황이 싫었다. 이런 지독히도 이기적인 내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반복되었을 때 스스로를 의심했다. “나는 정말 나르시스트인가 보다. 죽기 전에 사랑 비슷한 거라도 해볼 수나 있을까?” 그런 의심은 곧바로 우울이라는 감정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자아 리비도와 대상 리비도의 균형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던 것일까? 대상 리비도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제 나의 의문을 풀어준 두 명의 정신분석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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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을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그런 환자(신경증자)들도 사람이나 사물과의 성애적 관계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환상 속에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런 환자는 현실적 대상을 자신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 상상의 대상으로 대체하거나 현실적 대상을 상상의 대상과 뒤섞어 버리는 것이다. (나르시시즘 서론 - 프로이트)


환자들이 우울하다고 이야기할 때, 그것을 추적하여 들어가다 보면, 우울이 아니라 분노, 특히 부모에 대한 분노인 경우가 많다. 분노의 대상이 부모이기 때문에, 그러한 분노에 대한 지속적인 방어가 있고, 그러한 방어 과정의 한 징후로서 침체된 기분 상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부모에 대한 증오가 부모에 대한 사랑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억제를 발동시켜 그를 무기력한 상태에 빠트릴 수 있다.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 - 맹정현)


정신분석가들은 대상이 보이지 않는 대상 리비도에 관하여 말한다. 그 대상은 상상의 대상을 뜻하며, 상상의 대상은 부모인 경우가 많다고 덧붙인다. 정신분석가답게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상 리비도가 무의식 속 상상의 대상(부모)에 몰려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상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아이의 생존권을 쥐고 있었기에 그렇다. 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그들과의 특정 관계(특히 어린시절 사랑을 획득하는 방식)가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된다. 쉽게 말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말이다. 의식의 영역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에서.


그곳에서의 부모는 현실 속의 대상과는 다르다. 누구보다 불완전함을 느끼는 아이에게 완전함을 가져다줄 상상의 대상인 것이다. 위의 두 정신분석가는 그러한 상상의 대상에 리비도가 몰린 경우를 이야기했다. 이 말은 그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이어진다. 인간의 리비도는 한정적이니 말이다. 심지어 누군가(현실적 대상)를 만나도 자신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 상상의 대상으로 대체하거나 뒤섞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까지 한다. 연애를 할 때마다 반복되었던 특정 관계 혹은 이해 못할 자신의 행동. 그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종혁
- 철학흥신소 수석 요원.
- 우울증 핑계대고 퇴사해서, 놀고 먹고 있음
- 놀고 먹다 지쳐, 랩을 만들고 주짓수하고, 스쿠버다이빙, 글쓰고, 철학 공부 하고 있음.

- 창의적인 인간임(창의성은 놀 때 발현된다는 것을 삶으로 입증 중)
- 방황하다가 이제 뭐 좀 할 것 같음. (다행히 아버지가 돈이 좀 있음)
- 철학을 삶으로 받아들인다고 쌩똥을 싸고 있음.

- 요새 공부 좀 했다고, 글이 길어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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