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감을 극복하는 법
1. ‘증오’의 대상을 떠나보내기
‘반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제 답할 수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증오’의 대상을 떠내보면 된다. 반감은 증오의 찌꺼기 아닌가. 그러니 증오를 떠나보내면 반감은 애초에 생길 수 없다. 이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제 세상의 수많은 ‘김 대리’ ‘박 과장’ ‘문 부장’에게 아무런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김 대리’ ‘박 과장’ ‘문 무장’도 반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불성실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한 남자를 증오하지 않는다. 그 남자 역시 무겁고 고된 삶을 잘 살아보려 무던히 애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아버지를 한 남자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증오의 대상 하나를 떠나보냈다. 이제 무책임·무능력·불성실·자존심이라는 그릇에 누가 담기더라도 그 사람에게 반감을 갖지 않게 된 이유다. 증오의 대상을 하나 떠나보내며 반감이라는 찌꺼기 역시 떠나 보내버렸다.
‘증오의 대상을 떠나보내기’ 이것이 가장 확실히 반감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사람마다 증오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버지를 극심하게 증오하는 이는 증오를 떠나보내기 쉽지 않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증오의 대상을 떠나보내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반감 역시 긴 시간 극복하지 못하거나 혹은 영원히 극복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두 번째 방법이 있다.
2. ‘반감은 증오의 찌꺼기’라는 사실을 깨닫기
‘희연’은 여전히 어머니를 증오한다. 하지만 더 이상 옆 팀장에게 반감을 갖지 않는다. 즉, 증오의 대상을 떠나보내지 않고도 반감을 극복한 셈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희연과 나눈 대화에 그 답이 있다.
“선생님, 저는 왜 옆 팀장이 이유 없이 싫을까요?”
“팀장을 안보고, 거기서 엄마를 보니까 그렇지.”
“아.... 그렇구나.”
반감은 일종의 환영이다. 어떤 대상에서 증오의 대상이 겹쳐 보이는 환영. 옆 팀장에 대한 희연의 반감은 환영이다. 그 팀장에게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환영. 이 환영을 제거하면 반감은 사라진다. 어떻게 이 환영을 제거할 수 있을까? ‘반감은 증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자체로 가능하다. 달리 말해, 자신의 반감이 ‘자상한 간섭’(엄마)에 대한 증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된다.
‘반감은 증오의 찌꺼기’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팀장에게 겹쳐진 엄마의 잔상이 사라진다. 그렇게 반감이라는 환영이 제거된다. 그제 서야 있는 그대로의 팀장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때, 경멸이든 호감이든, 그 팀장에 대한 진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반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증오 대상을 떠나보내기. 그것이 어렵다면, 반감은 증오의 찌꺼기라는 사실을 깨닫기.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