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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싫어진 제자.

이유 없이 싫어진 제자다. 그가 왜 싫어졌을까? 그와의 일들 복기해보았다. 제자들과 다 함께 여행 갔던 어느 날, 그와 나는 장난처럼 누워서 몸 씨름을 했다. 그가 갑자기 힘을 과하게 썼다. 어렸을 때부터 몸 쓰는 운동을 해서 알고 있다. 거기서 힘을 더 쓰면 둘 중 하나는 다치게 된다는 걸. 그래서 그에게 그만하자고 했다. “황진규 조빱 새끼네!” 술에 취한 제자는 연신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나지 않았다. 귀여웠다. 자신의 육체적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이후부터 종종 그날 일이 생각났다.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그 불쾌한 감정에 당황했다. 그 날 나는 패배감을 느꼈던 걸까? 그가 나를 함부로 대해서 기분이 나빴던 걸까? 그래서 불쾌한 감정이 들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할 것 같다. 무의미한 일에 힘을 쓰느라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가 ‘조빱 새끼’라고 말한 것도 불쾌하지 않았다. 억압된 삶에 술이 들어가 튀어오르는 감정의 분출을 이해못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다. 


 그런데 왜 점점 불쾌한 마음이 들었을까? 그 제자가 한 동안 연락이 없다가, 수업 청강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날 알았다. 그 제자가 왜 싫어졌는지. 그는 수업이 들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육체적 능력을 과시하러 온 것이었다. 한 참 운동 중인 그는, 민소매 옷에 짧은 반바리를 입고 자신의 몸을 과시하러 온 것이었다. 왜 철학 수업을 듣는 곳에서 몸을 자랑하고 싶었을까? 거기서 자신의 몸이 가장 부각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 제자는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면 철학을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왜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서 철학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곳에서 가장 아는 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애정결핍과 질투 그 자체다. 언제 어디서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고 모든 사람에게 은근한 관심을 받기를 바란다. 동시에 주위 모든 사람들을 조연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이제 알았다. 그가 왜 싫어졌는지.     


 그 제자가 “황진규 조빱새끼”라고 말해서 기분이 나쁜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조빱쌔끼로 만들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있다. 그 사실을 직감해서 불쾌하고 불편했던 게다. 늘 주위 사람들을 질투하며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되기를 그 마음이 어찌 불편하고 불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두 나를 쳐다봐!"  그것은 함께 서로 보듬고 아껴주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장 크게 균열 내는 마음 아닌가.   


 '질투와 애정결핍을 잘 다루어야 한다'는 나의 이야기에 그는 항상 '다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삶을 성찰해보기보다 더 자극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있기 위한 선택들을 하고 있다. 그를 만날 때 악취를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향기처럼 느껴지는 악취.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한 코를 찌를듯한 향수의 악취. 물론 악취를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 악취가 내게 스며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그 제자가 풍기는 애정결핍과 질투의 악취는 견디기 어렵다. 그 악취가 조금씩 내게 스며들어 내 삶의 활력, 함께 하는 우리의 활력을 떨어트리고 있음을 직감해서다. 그 제자의 질투의 악취는 그만큼이나 깊고 진하다. 내가 그 제자를 생각할 때마다 느꼈던 슬픔이 왜 그리 컸는지 알겠다. 그것은 이중의 슬픔이었기 때문이다. 그 제자의 악취가 남긴 슬픔에, 내가 그 제자를 안고 갈만큼 좋은 선생이 아님을 확인하는 슬픔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좋은 선생이었으면 좋으려만. 슬프게도 아니다.  그 제자를 껴안고 갈만큼 좋은 선생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일은 아프고 또 슬픈 일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 슬픔이 거짓말을 하는 삶보다는 덜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되돌아보니, 그 제자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지금 내가 어떤 선생인지 에누리 없이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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