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자기비하'와 '거만'
오해가 ‘나’를 향할 때
‘오해’에 관한 오해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해는 언제나 쌍방향이다. 즉, 오해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오해가 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자신이 받았던 오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자신이 했던 오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이다. 때린 사람은 없고 온통 맞은 사람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받는 오해’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큼 ‘하는 오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오해’에 관한 오해다. 이런 오해와 관한 오해의 원인은 무엇일까? 자기오해 때문이다.
‘멸시’와 ‘과대평가’라는 오해는 타인을 향해 있다. 그런데 하지만 두 감정이 자신을 향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 자기오해가 발생한다. 자신을 멸시하고, 자신을 과대평가할 때, 자기 자신을 오해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오해는 자기오해에 기원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관련된 오해보다 자신에 관련된 오해를 성찰해보는 것은 더 중요하다. 먼저, ‘멸시’가 자신을 향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오해가 남기는 오해, ‘자기비하’
자기비하(비루함)란 슬픔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정당한 것 이하로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에티카, 제 3부, 감정의 정의29)
‘멸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 ‘자기비하’가 된다. “내 주제에 뭘 할 수 있겠어” 자기비하의 상태다. 이런 ‘자기비하’라는 이 흔한 감정은 오해다. ‘희선’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열심히 공부해서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때 마다 “내 주제에 뭘 할 수 있겠어”라며 ‘자기비하’에 빠진다. 즉, 그녀는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하여 정당한 것(주어진 문제들을 힘껏 극복했던 ‘나’) 이하로 하찮게 여겼다.”
이는 오해다. 자기오해. 그렇다면 이 ‘자기비하’라는 오해는 왜 발생할까? ‘자기비하’는 오해가 남긴 오해다. ‘멸시’라는 오해가 남긴 오해. ‘희선’은 왜 자기비하에 빠졌을까? 아버지 때문이다. “계집애 주제에 공부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유년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그녀를 멸시했다. 그녀의 ‘자기비하’는 아버지의 ‘멸시’가 남긴 상흔이다. 아버지가 했던 오해(멸시) 때문에 그녀 자신도 스스로를 오해(자기비하)가 된 셈이다. 아버지의 멸시(오해)가 남긴 그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하여 정당한 것이 이하로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유아적인 오해, ‘거만’
거만이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정당한 것 이상으로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다. (에티카, 제3부, 감정의 정의28)
과대평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 거만이 된다. “내가 할 수 없는 건 없어” 거만의 상태다. ‘거만’이라는 흔한 감정 역시 오해다. ‘민섭’은 공부, 운동, 연애 그것이 무엇이든지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없는 건 없어”라며 거만에 빠진다. 즉,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정당한 것(뭐든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 이상으로 대단하게 여겼다.”
이는 오해다. 자기오해. 이 거만이라는 오해는 왜 발생할까? ‘거만’은 유아적인 오해다. ‘자기비하’라는 오해가 외부에서 온다면, ‘거만’이라는 오해는 내부에서 온다. ‘민섭’은 어떻게 거만에 빠졌을까?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외부로 나가지 않고 자신 안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가 공부도, 운동도, 연애도 진지하게 하지 않았던 것은 ‘거만해서’가 아니라 ‘거만하기위해서’였다. 민섭의 자기애는 외부의 타자와 관계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진 자기애다. 더 정확히 말해, 세상에 자신 혼자뿐이기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뿐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부, 운동, 연애에 최선을 다하면 알게 된다. 세상에 사랑받을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나보다 훌륭한 사람은 언제든 있게 마련이니까.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민섭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민섭의 ‘거만’은 세상 오직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는 유아적인 정신상태의 결과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에 대해 정당한 것 이상으로 대단하게 여겼다.” 스피노자는 이런 거만을 광기의 일종을 본다.
자기자신과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적정 이상으로 대단하게 (중략) 여기기 십상이라는 것을 안다. 이러한 표상이 (중략) 자신에 관계할 때는 거만으로 불리며, 광기의 일종이다. (에티카, 제3부, 정리26,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