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공백을 견뎌라.
그 공백에 섣불리 채워넣으려 것은 언제나 무의미다. s, spinoza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면 빨리 결정해야했다. 이직 or 자유인. 그 결정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자꾸 울음이 날것 같았다. 가슴은 아릿했고 정신이 아득했다. "11년의 커리어이고 지금까지 꽤 잘해왔지 않은가?" 라는 메아리가 울렸다. 이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것 같았지만, 자유인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몸도 마음도, 혼또니 월급쟁이로 11년을 살아왔다. 그러니 자유인이라는 결정을 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우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했고
혹시 모를 불안감에 울컥 잡혀먹히지 않을 어느정도로 내면이 강건해야 했다.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된 상태여야 했고
어떠한 방식으로 삶을 바라볼지 마음의 결심이 흐물한 상태이면 안되었다.
그리고 굳은 결심을 두고 굵은 가지를 치듯 몇가지 계획도 세워둬야 했다.
이런 고민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스피노자의 '에티카' 마지막 수업이 되었다. 고민이 깊을 때, 철학자의 가르침은 내 인생에 바로 닿아 스며든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에 대하여 완전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동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올바른 생활규칙이나 일정한 생활지침을 구상하고 이것을 기억에 남겨 인생에서 흔히 마주치는 개개의 경우에 끊임없이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회사를 다니면서 만들어졌던 억지 루틴은 내가 원한 루틴이 아니었다. 밤을 새도록 일을 할 수는 있었지만, 아침 잠이 많은 내게 출근시간을 맞추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찬 나만의 생기를 줄 수 있는 루틴은 무엇일까? 이 루틴을 고민해보는 잠시동안의 시간동안 어둑한 마음에 빛이 삐죽 새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사상과 심상들을 정리함에 있어서 우리는 항상 각 사물의 좋은 점들에 주의해야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언제나 기쁨의 감정에 근거하여 행동하도록 결정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퇴사를 했을 때의 좋은 점을 생각해보는 것은 결정적으로 큰 효과가 있었다. 수업 중이었는데 정신없이 책의 귀퉁이에 주루룩 써내려갔다.
툰 연재
에세이집을 낼 수 있을만큼 글쓰기연습
매일 운동
매일 산책
우리집고양이와 충분한 시간 보내기
초보 영어학습지 만들기
직접 도자기 만들기
조또, 인생 뭐 있나? 전세 아님 월세 아닌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도 된다. s, spinoza
기분이 한층 나아졌다. 수업 마지막에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다. 최근 갖고있던 생각을 말하다보니 갑자기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 결국 눈물이났다. 창피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눈물은 창피함의 눈물이 아니라 자부심의 눈물이었던 같다. 11년 동안의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었다는 자부심. 자부심이 있었던 11년을 마무리하려니 눈물이 났던 것이다. 마치 고3을 끝낸, 졸업식 날의 눈물처럼. 그리고 주말동안 마음을 굳히는 시간을 가졌다. 나름 생각을 정리 해보니 이렇다.
1. 너무 변해버린 회사 상황
2. 나의 꿈, 하고싶은 일에 대한 고민
3. 그림을 현실화 시키기 위한 이성적인 계획 수립
4. 생기를 불러일으킬 나만의 구체적인 루틴
1번은 현실이다. 말 도 안되는 직장에서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는 위기에 상황. 그건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성이다. 2번은 나의 잠재성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에 현실성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될 가능성. 3번은 2번을 이루기위한 큰 설계도다. 그리고 4번은 그 설계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재료라 할 수 있겠다.
"현자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지 그리고 현자는 오직 욕심에 의해서만 휘둘리는 무지한 자보다 얼마나 뛰어난지가 명백해진다." 스피노자 '에티카'
자유인으로서의 결정은 실재하는 나를 위한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의한 욕심이 아니다. 나의 감정, 나의 생기, 내 삶의 긍정을 위해서였다.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니까.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희미한 미래 앞에서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오직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루틴을 만들어 하루하루 살아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내린 결정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퇴사 후에 몇일 밖에 지났지만 꽤 잘 지켜내고 있다. 3개월 동안 내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지금의 차이나는 반복이 3개월 후에 어떠한 모습이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퇴직원을 내고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인사를 할 때, 내 모습은 아마 자신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동료들도 그 기운을 느낀것 같다. 많은 응원을 받았다.
언젠가 완전 자율출퇴근에, 좋은 문화와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다시 어딘가에 소속될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소소하게 일상툰을 연재시작했고, 홍보는 전혀하지 않았는데 77명의 팔로워가 생겼다. 신기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신기한 일들이 많이 펼쳐질 것 같다. 내게 슬픔을 주는 신기한 일을 만나도 좌절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처럼, 기쁨을 주는 신기한 일들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혼또니 월급쟁이의 자유인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 철학흥신소 비밀 요원.
- 철학흥신소 대표 눈물 생성기(자기 혼자 이야기하다가 울음, 한이 많은 가봄)
- 어린 시절 꿈이 월급쟁이임.
- 세 번 이직 끝에 꿈의 회사(표괴물)를 찾았음.
- 하지만 거기도 지옥이 되어서 퇴사했음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유인이 됨.
- 철학흥신소에서 '월급쟁이 마인드' 재활 중 (자유인으로 재활될지 모르겠음)
- 현재, 인생의 공백을 견뎌보고 있음
- 그림을 그리며 영상을 만들고 있음
- 악플은 여기로
(https://www.instagram.com/p/B0SgRENHd66/?igshid=tz9p1nm0es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