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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변화, 한계

‘차이’ 나는 삶을 살게 되면 두렵죠. 무엇인가 ‘변화’하기 때문이에요. 그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계’에 관련되어 있을 거예요. 현재 자신의 한계. 차이를 따르면 변화는 불가피하죠. 그 변화가 자신의 그 한계를 넘어버리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죠. 달리 말해, ‘나’가 더 이상 ‘나’가 아닌 존재로 있을 것 같죠. 그것이 차이와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이고, 동시에 한계를 두려워하는 마음이죠.      


 한계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 차이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 차이는 지금의 ‘나’가 허락하고 허용하는 차이였을 테니까요. 위반되지 않은 것은 차이가 아니죠. 위반을 넘는 차이, 달리 말해, 불안, 불편, 불쾌, 혼란, 혼돈을 야기하는 차이. 그런 진정한 차이를 단 한 번이라도 감행해본 이들은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것은 두려움 자체가 없기 때문이 아니에요. 한계를 두려워하는 ‘나’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차이를 경험한 이들 역시 두려움이 있죠. 하지만 그 두려움은 분명 진정한 차이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의 두려움과는 달라요. 진정한 차이를 경험한 이들은 한계를 넘을 ‘나’를 두려워할 수 있어도, 한계를 넘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넘을 ‘나’와 넘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몇 번의 차이를 반복하면 넘을 '나' 역시 두려워하지 않죠. 넘은 '나'는 더 이상 넘을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에요.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테니까요.       


 고민은 답이 찾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에요. 질문이 잘못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차이와 변화 사이에서 고민할 때 질문하죠. “나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겠는가?” 잘못된 질문이에요. 진정으로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에요. "나의 차이는 진정한 차이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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