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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삶, 감각적인 삶.

“마주침의 대상이 지닌 첫 번째 특성은 오로지 감각밖에 될 수 없다.”
「차이와 반복」 질 들뢰즈     

 

가끔 몰상식한 짓을 한다. 전시회에서 가이드라인을 넘어 그림과 조각을 만져본다. 그 표면의 질감을 느끼고 싶어서다. 그럼 가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만지기 전과 만진 후에 그림과 조각이 달리 보인다. 희한한 일이다. 그리고 그 희한한 일은 언제나 더 깊은 기쁨을 준다. 그 달리 보임은 언제나 더 큰 감정의 파동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삶을 살게 된 이후 좋은 점이 있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쭙잖게 이성적인 인간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동시에 감성적인 이들을 좀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감성적인 이들에게도 묘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들뢰즈를 공부하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감성적인 것은 감각되는 것과는 다른 사태일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지시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자체가 다른 인식능력들에 의해 겨냥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 대상은 재인과 대립된다. 왜냐하면 재인 안에서 감성적인 것은 오로지 감각밖에 될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이와 반복」, 질 들뢰즈   



 들뢰즈는 ‘감성’과 ‘감각’을 구분한다. ‘감성’은 ‘재인’再認에 관계 된다. 달리 말해, ‘재인’된 것에 의해 ‘감성’이 촉발될 수 있다. ‘재인’再認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다시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언젠가 보았던 사람을 생각해낼 수 없다가 다시 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인식하게 되는 경우다. 이런 ‘재인’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감성’을 촉발하는 것이 ‘재인’만은 아니다. ‘감각’도 ‘감성’을 촉발한다.


 감성에는 두 가지 감성이 존재한다. 재인의 감성과 감각의 감성. 어떤 드라마나 음악을 통해 따뜻한 감성에 젖는 사람이 있다. 이는 대체로 재인의 감성이다. 그 드라마와 음악에서 자신의 과거의 어느 시점이 겹쳐져 감성에 빠진 것이다. 이런 이들이 불편했다. ‘태양의 후예’를 보고 얼마나 따뜻한 감성을 느꼈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불편했다. “드라마는 천박하고 전시회는 우아해”라는 문화적 위계를 따지려는 허위의식 때문이 아니다.

     

 감성은 분명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모든 감성이 그런 것은 아니다. 재인의 감성은 퇴행적이다. 거기에는 어떤 마주침도 없다. 마주침이 없기에 지금-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의 후예’의 아름다움을 설파하는 그녀에게 느꼈던 불편함은 그때-거기에 그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시점의 자신을 만나고 있을 뿐,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가, 그 대화가 불편했다.   



“마주침의 대상은 감각 속에 실질적으로 감성을 분만한다.” 「차이와 반복」, 질 들뢰즈

      

 삶의 기쁨을 주는 감성은 감각의 감성이다. 들뢰즈의 말처럼, 마주침의 대상은 감각 속에서 감성을 분만한다. 재인이 아닌 감각. 그 감각이 촉발하는 감성이 더 강밀한 기쁨을 준다. 풋풋한 사랑 영화를 보는 것은 재인의 감성을 촉발한다. 물론 이 역시 기쁨이다. 하지만 이내 헛헛함으로 이어지는 기쁨이다. 사랑하는 이의 냄새를 맡고, 만지고, 보듬고, 핥는 것은 감각의 감성을 촉발한다. 이는 강밀한 기쁨이다. 강밀하기에 결코 헛헛함으로 변질되는 않는 기쁨.      


 나는 앞으로도 종종 몰상식을 짓을 하게 될 것 같다. 핥는 것은 너무 몰상식하니 참아보겠지만, 작품들의 냄새를 맡고 만져볼 생각이다. 만지기 전과 만지고 난 이후에 작품이 달라보였던 이유도 알겠다. 감각이 감성을 재배치한 결과다. 그렇게 나는 작품들과 마주쳤던 게다. 그렇게 감각이 감성을 분만한 것일 테다. 마주침의 대상이 나타났을 때, 물고 빨고 핥고 냄새 맡고 만지고 싶다. 재인의 감성을 벗어나, 감각의 감성을 향유하는 삶. 나는 그런  '감각'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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