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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이 아니라, 집'밥'이다.

집밥의 의미

1.

신기한 일이다. 우울하면 고기가 먹고 싶다. 고기를 굽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다.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 왁자지껄한 분위기. 이는 어찌 보면 불쾌할 수 있는 조건들 아닌가. 하지만 그 불쾌할법한 조건들이 나에게 큰 기쁨을 준다. 이유를 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우악스럽게 싸워대는 곳이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쪼들림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악다구니를 해대며 싸웠다.  

    

 하지만 한 달에 하루 즈음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정처럼 한 없이 화목한 날이 있었다. 불판을 꺼내 마루에서 삼겹살을 굽는 날이었다. 맛있는 고기 앞에서 우리 가족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하하호호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 나는, 삼겹살을 먹은 것이 아니라 그 드문 행복을 먹은 셈이었다. 그것이 내가 우울할 때 고기를 구워먹는 이유다. 행복을 먹고 싶을 때, 고기를 먹는다. 삼겹살은 내게 집 밥이다. 행복을 주는 집 밥. 

    

 영등포구청역에 ‘철학흥신소’라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뭐하는 곳이냐? 철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며 각자만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이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가끔 삼겹살을 함께 구워먹는다.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행복을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삼겹살을 먹는다. 철학흥신소에서 모인 사람들은 가족처럼 되어 간다.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의 정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 간다. 삼겹살은 그렇게 또 ‘집’ 밥이 된다.      


2.

집 밥의 따뜻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집 밥의 방점은 ‘집’이 아니라 ‘밥’에 있다.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인간에게 주어진 욕구를 함께 해소하면서 만들어진다. 가족(가정)이 왜 깊은 유대감을 가지는가? 단순히 ‘혈연집단이니까’라는 대답으로 설명할 수 없다. 먹고(식욕) 자고(수면욕) 싸는(배설욕), 세 가지 욕구 모두를 긴 시간 함께 해소했기 때문이다. 그 함께 해소한 욕구의 시간이 유대감을 만든다. 이것이 혈연집단이 아니더라도, 긴 시간 함께 생활한 이들에게서 모종의 유대감이 발견되는 이유다.      


 내가 삼겹살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유도 그렇다. 집이 중요하지 않다. 밥이다. 함께 식욕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삼겹살을 먹었던 곳이 집이 된 이유고, 그것이 내게 따뜻한 집 밥이 된 이유다. 삼겹살이 (따뜻한) 집을 만든 것이지, 집이 삼겹살을 만든 것이 아니다. 즉,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는 곳이 집이 된다. ‘집’이 아니라 ‘밥’이 먼저다. 집 밥의 따뜻함은 집이 아니라 밥에서 온다. 함께 삼겹살을 자주 먹었던 친구와 연인이 가족만큼 가까워졌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집 밥은 따뜻하다. 좀처럼 느끼기 힘든 유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집 밥으로 인해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집 밥의 진짜 의미는 ‘행복’(따뜻함, 유대감)의 반복에 있지 않다. ‘행복’의 확장에 있다. 우울 할 때 고기를 굽는 것이 집 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과거의 행복으로 퇴행하는 일이다. 힘들 때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를 홀로 찾는 일은 소극적 행복이다. 그 김치찌개를 새로운 사람들과 먹는 일. 그것이 적극적 행복이고 집 밥의 참 의미다.      


 밥을 통해 또 다른 집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는 곳이 바로 집니까. 그렇게 확장된 ‘집’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집 밥의 진정한 의미는,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는 곳이 집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집과 집 너머의 더 큰 집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집 밥을 통해서 말이다. 내가 삼겹살에서 느끼는 따뜻함은 과거의 집이 아니라, 또 다른 집에서 나오는 감성이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것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니까. 곧 철학흥신소에서 삼겹살 파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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