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징조 속으로 뛰어들기
미신이 해로운 이유
미신은 해롭다. 미신에 대한 열망이 자연스럽다 할지라도 달라질 건 없다. 왜 그런가? 미신의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큰 까닭이다. 미신의 거의 유일한 긍정적 효과는 ‘정서적 안정감’이다. 그런데 이 ‘정서적 안정감’(“안 씻으면 성적이 좋을 거야”)은 근본적으로 극심한 ‘정서적 불안감’(“성적이 나쁘면 어쩌지”) 위에 존재한다. 이는 미신을 통한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려면 먼저 ‘정서적 불안감’에 빠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미신은 불행이라는 토대 위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려는 행위인 셈이다.
결국 미신의 출발점은 인간의 나약함이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불확실함을 불확실함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함. 미신의 매혹은 우리의 나약함에 기원한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점집과 사주, 징크스와 오늘의 운세로 거짓 확실성을 보증 받으려는 사람들. 사랑의 불확실성을 감당하지 못해, 타로와 궁합으로 거짓 확실성을 보증 받으려는 사람들.
이들이 도달하는 곳은 안정된 확실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불안과 걱정이다. 미신은 이토록 해롭다. 크고 작은 미신들이 주는 헛된 정서적 안정감을 대가로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있었던가. 우리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강건하게 지켜내는 삶. 그런 씩씩한 삶. 그것은 미신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들러붙은 크고 작은 미신들을 어떻게 떼어버릴 수 있을까? 스피노자의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불길한 징조 속으로 뛰어 들기
우리는 희망하는 것을 쉽게 믿지만, 공포를 느끼는 것을 쉽사리 믿지 않도록 본질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전자(좋은 징조)에 대해서는 적정 이상으로 후자(불길한 징조)에 대해서는 적정 이하로 평가하도록 본질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도처의 인간을 괴롭히는 미신의 기원이다. (에티카, 제3부, 정리50, 주석)
스피노자는 인간을 희망하는 것을 쉽게 믿고,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을 쉽사리 믿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여, 인간은 좋은 징조는 적정 이상으로, 불길한 징조는 적정 이하로 평가하도록 본질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사주를 좋게 말해주는 점집은 더 자주(적정 이상 평가) 찾고, 사주를 나쁘게 말하는 점집은 덜 찾게(적정 이하 평가) 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바로 이것이 인간을 괴롭히는 미신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미신으로부터 휘둘리지 않을 방법이 찾을 수 있다.
고백하자. 나는 한 때 갖가지 미신에 휘둘리며 살았다. 4시 44분 우연히 시계를 보게 되면 괜히 하루 종일 기분이 찝찝했다. 시험 치기 전에 미역국을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지갑에 넣어준 부적을 모른 척 갖고 다녔다. 여자 친구가 있을 때 덕수궁 돌담길은 걷지 않았다. 괜한 짓해서 불행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미신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갖가지 미신들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그것은 내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미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미신의 기원을 뒤집어서 적용했다. 좋은 징조를 적정 이하로, 불길한 징조를 적정 이상으로 평가했다. 비유하자면, 사주를 나쁘게 말하는 점집을 집요하게 더 찾아다닌 셈이다. 정말로 그랬다. 의도적으로 4시 44분에 시계를 쳐다봤다. 시험 치기 전에 미역국을 두 그릇 먹었다. 어머니가 지갑에 넣어준 부적을 찢어버렸다. 여자 친구와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혹은 그럴까봐 문득문득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불길한 징조를 의도적으로 반복하면서 알게 되었다. 불길한 징조와 안 좋은 일 사이에 그 어떤 상관관계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불길한 징조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삶. 그것은 내면적 나약함을 벗어나 강건하고 씩씩한 내면으로 향해 가는 과정이었다. 근거 없는 미신에 휘둘리느니, 당당하게 불행을 맞이하겠다는 씩씩함. 미신에 휘둘리고 있다면, 불길한 징조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 알게 된다. 미신을 위반해도, 별일 안 일어난다는 것. 설사 안 좋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건 우연의 결과 일뿐, 불길한 징조와 그 어떤 상관관계도 없다는 것. 그렇게 미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미신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진정한 정서적 안정감이 찾아온다. 미신이 주었던 정서적 안정감은 정서적 불안정으로부터 파생된 것 아닌가. 그래서 이는 삶을 부자유하게 정서적 안정감이다. “씻으면 안 돼!” “물 건너 여행 가면 안 돼!” “궁합이 안 맞는 사람은 안 돼!” 이런 부자유를 통해 얻게 된 안정감이다. 하지만 미신이 사라졌을 때 찾아오는 안정감은 삶을 자유롭게 하는 정서적 안정감이다. 씻고 싶을 때 씻고, 여행가고 싶을 때 여행 가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 이런 진짜 정서적 안정감은 반드시 더 기쁜 삶으로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