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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불륜'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의 외로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그때 비로소 해탈할 것 이다. 임제의현臨濟義玄


불륜. 명절에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묻자. 불륜이 무엇인가? 불륜不倫은 ‘무리倫가 아니다不’라는 의미다. 즉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불륜이다. 가족이라는 무리를 기준으로 보자면, ‘나’를 중심으로 두 가지 무리가 있다. ‘자식으로 포함되는 무리’와 ‘부모로서 포함되는 무리’ 흔히, 불륜은 후자의 경우만을 지칭한다. 즉, 부모(혹은 가능적 부모)로서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과 육체적 정서적 관계를 맺는 것을 불륜이라 한다.    

  

 하지만 사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전자의 경우, 즉 ‘자식으로 포함되는 무리’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불륜이라 해야 한다. 후자는 선택 가능한 무리이고 전자는 선택 불가능한 무리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명절에 집으로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일이 바빠서인 경우도 있고, 가족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인 경우도 있다. 전자는 불륜이라 말할 수 없다. 정서적으로 이미 무리에 속하고 혹은 속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후자다.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아무 죄책감 없이 휘둘러 대는 날선 칼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불륜을 저지른다. 명절에 가족으로 찾지 않는다. 무리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외롭다. 많은 문명들이 왜 불륜을 그토록 금시기 했겠는가. 무리를 떠난 인간의 그 절절한 외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일 테다. 그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어, 불륜에 도덕과 윤리의 라벨을 붙인 것일 테다.     


 가족이 싫지만 외로운 존재들. 모두 떠난 명절을 홀로 지내야 하는 존재들. 그들은 묻는다. 무리로 돌아가야 하느냐고. 아니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깊은 회한이다. 무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명절에 홀로 남겨진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불륜을 저지르시라. 아픔과 상처의 슬픔을 남기는 가정을 떠나시라. 외로움을 가슴에 담고 무리를 떠나시라. 불륜을 저지를 수 없다면 영원히 불행한 무리에 머무르게 될 테니까.


 무리를 떠나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자들. 그들만이 진정으로 성숙할 수 있다. 불륜의 희망은 거기에 있다. 불륜을 행하는 자들만이 무리를 다시 만들 수 있다. 상처와 아픔의 슬픔을 주는 무리가 아니라, 치유와 충만의 기쁨을 주는 무리. 우리가 그리도 찾던 기쁨의 '무리'는 '혼자'가 되지 않으면 결코 찾을 수 없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슬픔의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고 기쁨의 무리를 쉽사리 찾을 수 없는 이유다.


 불륜. 그것이 남긴 외로움은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 ‘성숙한 이들만이 함께 할 수 있다’ 이 말이 왜 무거운 말인지 이제 알 수 있다. 그것은 ‘홀로 남겨진 이들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인 까닭이다. 불륜을 겁내지 마시라.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라. 그 외로움과 두려움의 터널을 건너오면 알게 된다. 불륜에 맞선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나 역시 그 곳에서 ‘홀로’인 이들과 ‘함께’하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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