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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는 이들에게

" 언어 관습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최고의 의의意義는 가르쳐지지 않는다. 최고의 의의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열반은 증득證得되지 않는다." 
《중론》, <관사제품> 나가르주나



1.

언어. 당신의 생각처럼 언어는 중요하지 않죠. 언어로 전달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고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언어 너머의 것들로 전달되니까요. 그래서 성숙한 이들은 말하지 않고 살려는 것일 테죠. 당신 역시 그걸 알고 있죠. 그런 앎은 잠시 잊고 묻고 싶어요. 당신은 왜 말하지 않는 것일까요? 되돌아보면 당신은 말이 없었죠.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뿐 정작 당신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죠. 처음부터 지금까지.


 당신의 언어-없음은 성숙함 혹은 성숙함의 준비 때문이었을까요. 더 적게 말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말을 하지 않으니. 당신이 없는 시간 동안, 종종 당신이 그리웠어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모르죠. 당신이 그리운데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고, 그 그리움이 당신에게 닿기나 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말을 하지 않으니.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 종종 당신을 생각하며 알게 된 게 있어요. 당신이 말이 없는 이유. ‘당신은 자신이 여전히 싫은 거구나.’ 언어 너머의 삶을 보고 싶어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말을 하지 않는 것이구나. 당신에게 언어 너머의 삶은 일종의 도피처구나. 당신을 드러내 보일 자신이 없는 당신이 도망가는 도피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당신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말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이들은 많죠. 자기-미움으로 말을 하지 않는 이들. 그들의 종착지를 알고 있어요. 냉소주의와 허무주의. 자신을 숨기기 위해 말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한 참 듣다보면 (무의식적) 묘한 쾌감이 들죠. 자신이 심판자 혹은 평가자의 위치에 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너는 이게 문제야. 너는 그것이 잘못 되었어” 그  말없는 심판과 평가는 쾌감이고, 그것은 삼중의 쾌감이죠.     


 자신은 안전한 곳에 숨을 수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쾌감. 그 안전한 곳에서 타인을 평가, 심판할 수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쾌감. 그리고 그 타인을 참조점으로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느껴지는 쾌감. 그 삼중의 쾌감이 끝내 다다르는 곳은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요. 그것은 자신을 내보이지 않았던 삶의 댓가에요. 저는 당신이 그 곳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요. 그 되돌릴 수 없는 댓가를 치르지 않기를 바라요.       


2.

언어는 중요해요. '언어 너머의 삶'은 '언어의 삶'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적이 있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인 까닭이에요. 말하며 살아요. 당신 자신을 내보이며 살아요. 당신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의 부족함을 잘알고 있어요. 쉴 새 없이 떠들고 쉴 새 없이 써대는 삶이 어찌 실수가 없고 부족함이 없을까요 


 하지만 저는 아직 언어의 세계에 좀 더 머무를 생각이에요. 저는 삶을 한 걸음씩 살아내고 싶어요.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고 싶어요. 덧없는 조바심과 욕심으로 삶의 어느 지점을 건너뛰며 살고 싶지 않어요.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요.

  

 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의미 없는 이야기일 수 있음을 알고 있어요. 당신은 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저 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그렇더라도 괜찮아요. 제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말하는 당신’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라도 말하는 당신’니까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어요.


 언어의 세계에 충분히 머물러요. 너무 빨리 언어 너머의 세계로 가려고 하지 말아요. 언어 너머의 삶 뒤로 숨지 말아요. 당신 자신을 숨기지 말아요. 자신을 용기 내어 들러낼 때 발견하게 될 거예요. 조금씩 더 근사해지고 있는 자신을. 자신을 긍정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어요. 언어의 세계에서 주고 또 받을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오해의 상처들을 기꺼이 감당하며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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