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박효웅 칼럼] 백수의 철학

철학은 신기하다. 내가 어느 시점에 있건 그 철학자의 사유, 개념이 내 삶의 무언가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하며 사유의 범위를 넓혀갈수록, 왜 우리는 철학을 암기과목으로만 익혀 왔는지에 의아해졌다. 그것도 하나의 과목도 아니고, ‘윤리’라는 과목에 등장하는 몇가지 키워드 정도로 배웠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얼마전 베르그손의 '지속' 개념에 대해 배웠다. 공간이 배제된 순수한 몰입(지속)의 시간. 나 자신의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체험적인 시간. 제대로된 앎은 삶으로 들어와 박힌다.


"나는 충분히 그렇게 살고 있는가?"


maldives-3224470_1920.jpg


현재, 백수인 나는 누가봐도 지속의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의 환경에 있다. 충분히 내 욕망에 따라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속을 관통"하는 삶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지속은 욕망과 이어져있다. 선생님은, 이 지속의 시간은 욕망에 따른 것이라 이야기했고, 그 욕망(꽂히는 것)에 따른 지속을 통해 내 ‘존재감’이라는 것을 만들 것이라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내가 요즘 꽂힌 것이 있는가?"


여기서부터 삐그덕이다.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무엇보다 지금은 글쓰기가 중요하다. (나는 지금 글쓰기 수업 중이다) 그 글쓰기를 착실히 수행하며 과거의 '나'를 만나고 내일의 '나'를 만난다.


글쓰는 삶은 고단하다. 특히 과거의 저주스러운 나를 만날때면 마음이 바닥을 친다.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나 얼룩덜룩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아왔나 울적해지기도 한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함이란 그것이 과거임에 있어 슬픔이다. 오롯이 그 슬픔의 시간을 견디고 고단해진 몸을 침대에 뉘인다. 그래. 이제 자자.


IMG_6354.jpg


꽂힌 일이란, 즉 내 신체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내 직관에 따라 코나투스(삶의 활력)를 높여주는 기쁜 몰입의 대상을 찾는 것.그런 점에 있어 분명 글쓰기는 내게 오롯한 기쁨은 아니다. 슬픈 기쁨이다. 끝내는 기쁨을 주지만, 그 과정에서 한 없이 슬퍼지는 일이다. 글쓰기와 철학이 내게 슬픈 기쁨이 될 것을 믿기에 나는 오늘 내가 할일을 한다.


욕망하는 것만 지속'된다'. 지속은 수동이다. 결코 능동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욕망하는 것, 즉 몰입의 대상을 요즘 찾지 못해 조금 속상한 요즈음이었다. 게다가 요즘 한창 빠진 (요즘은 좀 뭔가 감을 찾은 듯한 느낌이 와서 그 즐거움이 배가되던) 클라이밍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함의 답답함이, 울적함이, 슬픔이 되었다.


게다가 소화가 안되고 체한듯 턱 막힌 느낌이 들어 모든 음식물에 거부감이 든다. ‘당장 먹고싶지가 않고 먹고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음’이 이렇게나 속상한 일이라니. 새로운 경험이다. 슬픔은 언제나 원망의 대상을 찾는다. 철학을 배우면서 다행인 점은 내가 지금 그 원망의 대상을 찾고있구나를 자각하게된다는 점이다.


지속(몰입)함으로써 느껴지는 조급함이 아닌, 몰입(지속)하지 못함의 조급함이 느껴지자 뭐든 찾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저것 시도해보았다. 내 자신을 시험삼아 지속삼을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지속은 ‘자아를 그 자체로 그냥 살아가게 내버려’두었을 때의 의식상태다. 그런데, 지속삼을 것을 고민한다는 것이 뭔가 뒤바뀐 느낌이다.


"정말 나는 지속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욕망하는 것이 없는가?"


KakaoTalk_20191213_121549729_02.jpg


나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귀리(반려묘)의 눈을 바라보면 심장이 덜컥내려앉을때가 있다.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매료된다. 귀리가 기지개펴는 모습, 나를 바라보는 모습, 사랑하는 이 존재가 집안을 가만가만 산책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있으면 시간 순삭.


내가 좋아하는 웹툰을 보는 시간은 정말 몰입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모든 요일에 내가 보는 웹툰이 전부 다르다.밤 11시가 넘으면 그 다음날의 툰이 올라온다.연재라 그런지 너무 짧은게 흠이다.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니. 몰입의 시간이 또 순삭.


그림을 그리고 콘티를 짜는 시간도 좋다. 이건 내가 업무할 때의 피치를 올리는 기분과 비슷한데, 장소가 집이라는 점, 그리고 맘껏 시간을 내가 관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지금은 글쓰기에 집중하느라 만화를 자주올리지 못하는게 부담이 되는바람에 내멋대로 휴재중이지만, 조만간 한편 그려봐야겠다.


KakaoTalk_20191113_133614887.jpg


나는 (때로는) 글쓰는것이 좋으며, 음악듣는 시간이 좋다. 나를 매료시키는 책을 읽을 때 기분이 좋다. 만났던 사람의 귀여움을 찾는것도 즐겨한다. 사람들의 귀여움을 찾는 일이란 즐거운 일이다. 그 생각에 빠지다보면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킥킥킥 웃음이나온다.


철학. 아주 좋다. 내 인생을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 어제부터 시작한 일이지만, 선생님께 배운 것을 복습해보는 것이 즐겁다. 이건 이른 아침 시간에 하고 있다. 가만히 선생님이 열정넘치게 한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려보고, 그 철학자를 마주치고, 그 사유를 내 삶에 대입해보는 것이 즐겁다.


베르그손은 내가 현재 어디에 지속하는지에 따라 나의 미래가 바뀐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 다른 사람처럼 그 꽂히는 것을 찾지 못해 여전히 마음이 조금 불안하다. 나는 그 꽂힘의 대상을 계속 찾는 과정이고, 어쩌면 단지 꽂히는 속도가 남들보다 느릴수도 있겠다.


어찌보면, 남들보다 더디어 보이는 나의 삶. 나의 지속의 대상, 내 욕망, 그 대상과의 마주침을 새롭게 찾아보겠다는 조급함은 잠시 내려두는편이 낫겠다.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자. 나는 이렇게 백수의 철학을 만들어가며, 철학적인 백수가 되어가고 있다. 행복한 백수.





박효웅

- 철학흥신소 비밀 요원.

- 철학흥신소 대표 눈물 생성기(자기 혼자 이야기하다가 울음)

- 어린 시절 꿈이 월급쟁이임.

- 세 번 이직 끝에 꿈의 회사(표괴물)를 찾았음.

- 하지만 거기도 지옥이 되어서 퇴사했음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유인이 됨.

- 철학흥신소에서 '월급쟁이 마인드' 재활 중 (자유인으로 재활될지 모르겠음)

- 현재, 인생의 공백을 견뎌보고 있음

- 그림을 그리며 영상을 만들고 있음

- 악플은 여기로

(https://www.instagram.com/p/B0SgRENHd66/?igshid=tz9p1nm0esna)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정주현칼럼] conting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