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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만년필'

언젠가 가난한 선배 글쟁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난해서 가끔 끼니조차 걸려야 했지만 만년필은 좋은 것을 샀단다. 이것은 흔한 허영이 아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네들에게 만년필은 생계의 수단이며,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다. 하여, 밥은 못먹어도 만년필만은 좋은 것으로 사고 싶은 것이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으로 그 마음을 잘 안다. 내가 사랑했던 선배 글쟁이들이 살아 있다면 나는 근사한 만년필을 선물해주었을 테다. 그들의 생계와 자부심 모두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음 세대의 글쟁이인 나는 만년필로 글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도 ‘만년필’이 있다. 노트북이다. 내게 노트북은 생계의 수단이며 자부심이다. 노트북을 열어 자판을 누를 때 기쁘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글 쓰는 삶이 내 자부심인 까닭이다. 내 ‘만년필’이 낡았다. 불안 불안했다. 한참 글 빨을 받아 글을 쓰고 있는 갑자기 만년필이 써지지 않을까봐. '좋은 만년필을 하나 사야지' 마음만 먹고 이래저래 생계 쫒겨 미루고 있었다.

           

 소중한 친구가 ‘만년필’을 선물해주었다. 그 선물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잠시의 고민 중에 선배 작가들이 생각났다. 나 역시 사랑하는 그들에게 만년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만년필이 그네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 염치불구하고 선물을 받기로 했다. 나의 생계 수단이자 자부심에 그 친구의 흔적이 담긴다면 더 기쁠 것 같았다. 글 쓰는 삶. 밥벌이를 하는, 자부심을 느끼는 그 삶에 그 친구도 함께 할 테니까. 

   

 고맙다는 말은 삼킨다. 대신 함께 해온 소중한 시간을 기억할 테다. 그리고 앞으로 또 함께 할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주어야겠다. 조금씩 아름다워지고 있는 그 친구가, 앞으로도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더 사랑해주어야겠다. 그렇게 그 친구 역시 자신만의 만년필을 찾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 내가 선물 받은 ‘만년필’로, 소중한 친구의 ‘만년필’을 찾아주고 싶다. 고맙다는 말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고 싶다.     

 

이제, 새 ‘만년필’로 잘살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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