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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LETS, 정말 가능 할까? 가능, 하다!

검은 백조를 찾아서

검은 백조, 한밭레츠

 

여전히 LETS라는 것이 정말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의구심을 완전히 거둘 수 없다. 태어나 이제껏 보아온 세상만이 유일한 세상이라고 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태어나서 하얀 백조만 보았던 사람에게 검은 백조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검은 백조를 잘 묘사한 책과 그림을 제시한다고 해도, 그 효과는 ‘정말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줄이는 정도에 그칠 게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단연 눈앞에 직접 검은색 백조를 가져다 놓는 방법일 테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 카운터펀치다. 컴퓨터를 켜고  http://www.tjlets.or.kr 입력해보자. 검은 백조가 나타날 테니까. 위 사이트 주소는 ‘한밭레츠’라는 단체의 주소다. 한밭레츠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두루’라는 지역화폐를 사용하여 앞서 이야기한 LETS의 개념을 우리가 사는 한국에서 적용하고 있는 공동체다. 캐나다도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도 이미 LETS를 현실에서 적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설마 그게 되겠어?’라며 강한 의구심을 마지막까지 거두지 못했던 우리에게 이 정도면 정말 ‘검은 백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밭레츠의 LETS의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LETS가 기존 화폐의 대용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밭레츠의 대회협력실장을 맡고 있는 김성훈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레츠는 간단합니다. 쪽지 두 개를 들고서 사람들 필요한 거 다섯 가지씩 써내라고 하고 그거 다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겁니다. 자기가 필요한 건 뭐고 줄 수 있는 건 뭐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느 특별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으면 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가나 잘할 수 있는 게 한두 가지는 있습니다. 한밭레츠 회원 중에 평소 폐병 있는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이 맹인 분을 동사무소까지 안내하는 품앗이를 한 적이 있어요. 폐병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던 분이 자기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연합기획취재단, ‘LETS 기획취재’ 중 발췌) 


인간의 동등한 존엄을 복원하는 LETS

위 사례에 등장하는 폐병에 걸린 사람은 자본주의적 시선으로 보면 돈을 벌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인식 때문에 건강이 안 좋긴 하지만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작고 소소한 일들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존감은 땅에 떨어진 것처럼 낮아질 수밖에 없다. 오직 그놈의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유하나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자본주의 안에서 일반적,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LETS라는 개념 안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폐병환자는 직장생활을 하는 정도의 고강도 업무는 할 수 없지만 시각장애인을 동사무소까지 안내하는 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면 폐병환자는 그 대가로 지역 화폐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번 ‘두루’(지역화폐)는 폐병환자에게 그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물물교환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직접 일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긍정적 자각은 물론이고 자신은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부정적 자기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사람냄새 나는 화폐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공동체 속에 있다면 적어도 돈이 없어서 생존에 위협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이런 공동체에 속해있었다면 생계의 압박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 처연한 죽음들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김성훈씨의 말처럼 ‘사람은 누가나 잘할 수 있는 게 한두 가지는 있게’ 마련이니까. 늘 불규칙한 수입 때문에 불안해하던 친구에게 한밭레츠를 소개해주었을 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기 있으면 적어도 돈이 없어서 굶어죽을 일은 없겠다’

  

 위와 유사한 사례들을 통해서 지금의 참혹한 자본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소외시켜왔는지 또한 여실히 알게 된다. 오직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LETS는 지금의 자본주의의 많은 문제점들을 완화 혹은 보완할 있는 아주 훌륭한 대안임은 분명하다. 나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LETS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또 익숙해지기를 희망한다. 그간의 한밭레츠의 활동과 실제로 LETS가 한국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싶은지를 조금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위 사이트로 접속해 보시라.


LET가 남긴 숙제들


 물론 LETS 실제로 진행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들보다 더 잘살고 싶다는 탐욕도 제어되어야 하고, 공동체 구성원간에 깊은 신뢰도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뿐인가? 만약 LETS가 보다 더욱 활성화된다면 정부나 기득권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중앙화폐는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삶을 영위한다면 정부의 국가를 어찌 운영할 것이며, 재벌 총수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 ‘칼 맑스’의 말처럼 자본가는 우리(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남기고,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국가는 재분배를 명분으로 우리(국민)들을 끊임없이 착취하니까 말이다.


 자본주의는 만만치가 않다. 자본주의라는 미친 열차를 멈추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문제점 정도는 넘어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분명한 것은 지금 이대로 자본주의를 방치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많은 문제점이 있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실천해보는 것으로 지금의 병적인 자본주의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어야 할 것이다. 그 늦춰진 속도만큼 우리는 제대로 삶을 영위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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