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집으로의 초대는 특별한 일이다

집은 특별한 공간이다. 집은 함께 ‘먹고 자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먹고 자는 것이 왜 특별한가? 원시생활을 생각해보라. 먹고 자는 것보다 골칫거리인 일도 없다. 음식공급은 늘 불안정했을 테고, 잠은 맹수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됨을 의미했을 테다. 


 그런 연유로 호모사피엔스라는 종種은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고, 그 진화의 하나의 결과가 바로 집이다. 집은 함께 먹고 함께 자는 공간이니까. 이것이 ‘집’이 가장 깊은 신뢰의 공간인 이유다. 네가 먹을 것이 없으면 내가 사냥해고, 내가 잘 때 네가 지켜주는 공간이니까.       


 집으로의 초대는 특별한 일이다. 깊은 신뢰의 공간으로 초대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의 집에 초대 받았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피곤해서 한 숨 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뻤다. 그 기쁨은 그 친구에게 신뢰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를 집으로 초대하는가? 믿을만한 사람들이다. 그럼 그 믿을만한 사람은 어떻게 선별되는가? 사회적으로 공인된 관계에 의해서다. 예컨대, 가족, 이웃, 학교, 직장 등등. 아무리 결이 잘 맞는 사람이라도, 사회적으로 공인된 관계가 아니라면 쉽사리 집으로 초대하지 않는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일 수 있으니까. 


 서글프게도, 우리는 신뢰마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단독적'인 관계 아닌, '사회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그 친구와 가족도 아니고 이웃도 아니다. 같은 학교나 직장을 다닌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유리병 편지 같은 짧은 글을 보고 수업을 하러 온 사람이다. 그런 그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이 쌓여 집으로 초대할 사이가 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친구에게 신뢰의 대상이 된 것만큼이나 기존의 사회적 질서를 벗어난 신뢰 관계를 만든 것이 기뻤다. 나도 그 친구도 새로운 형식의 삶을 구성했다.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독적인 관계의 누군가를 집을 초대하고 함께 먹고 함께 자는 것. 그것이 새로운 형식의 삶 아닌가. 


 나는 그렇게 또 누군가에게 집으로 초대받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며 살 것이다. 또 나 역시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사회적 신뢰가 아닌, 단독적 신뢰를 맺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 그렇게 새로운 삶의 형식을 구성해나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