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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

“저도 제 삶이 나아지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다른 삶을 희망하는 이를 알고 있다. 그 사람이 『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을 보고 한 말이다. 뭉클했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산드라’는 우울증 때문인지 다른 원인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휴직 중이다. 복직을 앞둔 그녀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제시한다. 회사동료들은 그녀의 복직 대신 보너스에 투표했다. 하지만 그 투표가 공정치 않았기에 월요일 아침에 재투표를 하기로 했다. 그녀에게는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 남았다.


 ‘산드라’는 복직이 없이 생계를 꾸려갈 수 없다. 그녀는 남겨진 시간 동안, 16명의 동료들을 한 명씩 찾아가 설득해야만 한다.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의 복직에 투표해달라는 말은 어렵기만 하다. 그것이 부탁이라면 염치없는 것으로 느껴지고, 요구라면 뻔뻔한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어떤 이는 흔쾌히 복직에 투표하겠다고, 어떤 이는 고민해보겠다고, 어떤 이는 마치 자신의 돈을 뺏으러 온 사람처럼 산드라를 차갑게 대하며 거절했다.      



 우울증에 시름하던 그녀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디지 못했다. 수면제 한 통을 입 안으로 다 털어 넣었다. 깨지 않을 잠을 청하러 침대에 몸을 뉘였을 때 한 사람이 찾아왔다. 고민하던 동료는 산드라를 응원하며 복직에 투표해주겠노라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산드라’는 병원으로 가서 자살을 취소하고 다시 희망을 쫒는다. 그렇게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 지났다. 투표 결과는 8:8, 그녀는 복직하지 못했다.            


 사장은 그녀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다시 '희망'적인 제안을 한다. 지금 일하던 비정규직의 계약이 만료되면 그녀를 복직시켜주겠단다. “남을 해고 시키고 복직할 수는 없어요.” 산드라는 평온한 표정으로 답하며 회사를 나섰다. 산드라는 ‘희망’을 쫒았다. 그 ‘희망’은 사라졌다. ‘희망’의 증발은 절망인가? 아니다. 결과로서의 희망만이 그렇다. 과정으로서의 희망이 있다. 그것은 과정 자체가 이미 결과인 희망이다.   


 

산드라의 ‘희망’은 복직이었다. 그 희망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복직은 결과로서의 희망이다. 다행히, ‘산드라’는 '결과로서의 희망'을 쫒으며, '과정으로서의 희망'을 발견했다. 그 과정은 그 자체로 이미 '희망'이었다. 그 희망은 ‘인간다운 삶’이다. ‘산드라’는 복직이라는 희망을 쫓는 동안 무엇을 보았을까? 누구에게나 힘들지 않은 삶은 없으며, 그 와중에도 자신을 도우려는 이들을 보았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인간다운 삶’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삶이 나아지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이는 아름다워지고 있다. 그 사람은 긴 시간 결과로서의 희망을 쫒았다. 자신이 원하는, 아니 세상이 원하는 결과를 향한 희망만을 품었다. 그렇게 조금씩 절망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 이가 이제 과정으로서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 그에게서 산드라를 본다. 삶의 고난이 닥쳤을 때, 잠들어 버리고 싶은 마음을 넘어가고 있는 그를 본다. 그렇게 조금씩 더 아름다워져 가고 있는 한 사람을 본다.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회사를 나서며 눈부신 미소로 말하는 산드라를 본다. 

     

 “여보,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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