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비칼럼]'적응'의 또 다른 관점

'앎의 나무' 수업 후기

진화의 관점에서, 유지(견딤)하는 것 자체가 최선이다.


"갈라파고스제도라는 섬에는 목이 짧은 거북이가 살고있었지만, 그 중 적은 수지만 변이된 목이 긴 거북이도 있었다. 그 섬에는 키가 큰 선인장이 있어, 목이 긴 거북이가 살기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결국 목이 긴 거북이들이 더 많이 살아남아 번식을 하였고, 그 섬엔 목이 긴 거북이들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이는 중 1 과학교과서 내용 중 생물의 다양성과 변이에 대한 내용이다. 한 종류의 생물 무리에는 다양한 변이가 존재하고, 그 무리에서 환경에 '잘 적응'한 무리들이 더 많이 살아남아 번식을 하였고, 이것이 반복되면 원래의 생물과 다른 특징을 가진 생물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교과서의 결론 도출 과정을 되짚어 보자. 저 섬에는 애초에 목이 긴 거북이 거북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유를 조사해보려고 섬을 살펴보니 '키가 큰 선인장' 들이 많다는것을 발견했다. 그 두 항(긴 목 거북이, 키 큰 선인장)들의 인과관계를 역으로 따져 추측해 본것일테다.


charles-robert-darwin-62911_1920.jpg


즉, 목이 짧은 거북이들이 많이 없는 이유를 '키 큰선인장' 을 먹지 못해 번식하지 못한것이라 미리 정해둠으로써, 목이 짧은 거북이가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 생물로 그려놓았다. 하지만 목이 짧은 거북이는 '키 큰 선인장' 이라는 환경에서 보면 살아남지 못한 루저지만, 땅에서 나는 먹이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생물인데 말이다.


나는 목이 짧은 거북이가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마뚜라나의 "앎의 나무"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더 잘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을 뿐' 이다. 즉 유기체의 다양성만큼이나, 생명체의 적응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실현 될 수 있고, 여기에서 더 잘 적응하고 덜 적응하고의 우위는 없다는 것이다.


마뚜라나의 통찰을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생물마다 적응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으며, 우린 그저 자신에게 좀 더 맞는 환경을 찾아 그곳에서 버티면된다. 여기서 '최선' 의 방식이란없으며 그곳에서 생존하면서 버티며(유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는 내가 원하는 환경에 "적응한 생물"이 되는 것이다.


sea-2361247_1920.jpg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어떻게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으로 보냈다. 나에게 "적응"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적응을 잘하기 위해 나를 이리저리 바꾸는것에 모든 에너지를 다 썼다. 그래서 내가 적응을 잘했을까? 나는 이 섬에도, 저 섬에도 발을 못붙이는 거북이가 되었다. 이곳저곳에 적응하느라 결국 내가 어떤 먹이를 먹고 자라야하는 생물인지를 보지 못했다.


먹어도 안체하고,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먹이를 찾을 생각을 못했다. 결국 나는 뭘 잘못먹었는지 이상하게 먹는것바다 체하는 거북이가 되었다. 나는 이제 나에게 주어진 섬에서 되는대로 먹을것을 찾아다니는 생물체가 되지않을것이다. 물속으로 뛰어들어 본 나는 이제 안다. 나의 앞 발과 뒷발이 걷을 수 있는 다리 일뿐만 아니라, 헤엄칠 수 있는 물갈퀴임을.


이제, 나는 나의 물갈퀴를 믿고 내가 먹고 싶은 먹이를, 내 몸이 아프지 않는 먹이가 있는 곳으로 찾아 떠날 것이다. 거기서 뿌리고 내리고 '적응'할 것이다. '최선'으로써가 아닌 '생존'으로의 적응 말이다. '최선'은 '생존'부터 한 후 생각할것이다. 아니 어쩌면, 선생의 말처럼, 생존으로서의 적응 그 자체가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박강비

-철학흥신소 비밀 요원.

-철학흥신소 수업 최장거리 매주 통근자(서울-양산, 매주)

-현재, 서울 거주!! (서울부심)

-촌년이 서울와서 적응 중 (서울말 3급 자격증보유.)

-글과 술, 산책과 나무, 꽃과 파스타. 그리고 치킨을 좋아하는 섬세한 영혼. (치킨을 매번 울면서 뜯음)

-마음이 담긴 글을 쓰고 싶어하고, 조금씩 쓰고 있음.

-하지만 현재, 대치동 일타 강사의 길을 걷고 있음.

- '현실'(일타강사)에 받을 딛고 '꿈'(작가)을 이뤄가고 있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정도 칼럼] 내가 떠나 보낸 개새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