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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없는 위스키'와 '위스키 없는 편지'

편지가 없었다. 제자가 생일선물로 꽤 값비싼 위스키를 선물해주었다. 이러 저리 찾아보아도 편지는 없었다. 마음이 복잡 미묘했다. 마음 한 편은 따뜻해지면서도 또 한 편으로 시려왔다. 그 친구는 왜 편지를 쓰지 않았을까? 단순히 귀찮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친구의 삶을 조금 안다. 그 친구는 지독히도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스무 살을 몇 해 넘겼을 때, 가장 노릇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런 서럽게 고된 삶이 어떤 삶인지 나는 알고 있다. 똥줄이 타는 것 같은 그 가난의 공포를 알고 있다.


 그 친구에게 돈은 탐욕의 대상이 아니다. 가장 소중한 어떤 것이다. 아마 그것이 내게, 아니 다른 소중한 이들에게 편지를 선물하지 못하게 된 이유였을 거라 짐작한다. 어떤 사람이든, 소중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선물해주고 싶은 법이다. 돈으로 자식을 기르려는 부모는 안쓰러운 부모이지 나쁜 부모는 아니다. 그들 역시 소중한 이들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 부모는 나름의 사랑을 주고 있는 셈이다. 

    

 편지 없는 위스키를 선물 받고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그 친구가 내게 그런 존재가 된 것처럼, 나 역시 그 친구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그것도 꽤 많이 내게 선물해주었으니까. “생일 축하해요”라는 진심을 꼭 편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편지 없는 위스키에서 그 진심을 느꼈다. 진심이란 것은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맥락 전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니까.  

    

 한 사람의 삶의 맥락을 조망할 수 없는 이는 선물의 진심을 알 길이 없다. 편지든, 위스키든, 돈이든 그 사람의 선물에서 결코 진심을 읽을 수 없다. 반대로, 한 사람의 삶의 맥락을 섬세하게 살필 수 있다면, 편지든, 위스키든, 돈이든 심지어 그것이 침묵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그 친구의 삶의 맥락을 읽어낼 수 있었기에, 편지 없는 위스키에서 따뜻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늦은 밤, 덩그러니 놓은 위스키를 보며 다시 마음이 시려왔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며, “소중한 이에게 종이 나부랭이나 줘서 되겠어.”라고 생각하는 그 친구가 얼핏 보여서. 선물의 고마움을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알겠다. 힘껏 가르쳐서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겠다. 그것이 그 친구의 진심에 대한 보답일 테다. 내년 생일에는 그 소중한 친구에게 ‘위스키 없는 편지’를 선물을 받고 싶다. 그 선물을 위해 그 친구를 사랑해주어야겠다. 일단 위스키 한잔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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