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데로사'의 죽음

포데로사는 죽지 않는다.
포데로사가 죽는 순간은, 그의 엔진이 멈추는 순간이 아니라 나의 엔진이 멈추는 순간이다.
나는 포데로사를 가슴에 묻고, 다시 포데로사를 찾으려는 이의 포데로사가 되리라. -황진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체게바라는 아르헨티나 고향집에서 포데로사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모터사이클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포데로사'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여준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출발해 칠레와 페루 언저리 안데스 산맥을 오를때쯤 포데로사의 엔진이 멈춘다. 어떻게든 포데로사를 고쳐서 그 생명을 연장시키려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포데로사의 생명은 거기까지였다.


남아메리카를 일주하겠다는 체게바라의 원대한 여정에 포데로사는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다. 함께 끝을 보기엔 포데로사가 약했을 수도 있고 포데로사가 가기엔 애초에 너무나 먼 여정이었을 수도 있다. 잔뜩 늘어진 채 엔진을 돌려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포데로사 앞에서 체게바라는 크게 상심한다. 그의 발이 되어주고 벗이 되어준, 사랑하는 포데로사의 죽음은 체게바라의 심장이 떨어져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체게바라는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포데로사 를 마음 속 한켠에 묻어둔 채 다시 길을 나선다. 걷고 또 걷는다. 그러자 포데로사 위 안락한 시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착취적인 자본주의와 오랜 식민지배로 희망을 잃고 번민하는 인민의 삶이 그에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에게 모터사이클 여행은 무료하지만 안락한 의대생의 삶으로부터 잠시 도피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포데로사의 죽음. 그것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 '강밀한' 죽음은 치기어린 청춘의 여정이 인민을 위한 삶으로 나아가게하는 촉매가 된다. 그 이후 체게바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체게바라로 다시 태어난다. 그 모든 것은 포데로사의 쓸쓸하고 가슴아픈 하지만 강밀한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포데로사의 죽음에 마냥 슬퍼할 수는 없다. 슬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걸을 것이다. 걷고 또 걸을 것이다. 그렇게 내 길을 나아갈 것이다. 나의 '포데로사'를 가슴 한켠에 고이 간직한 채.




이정도

- 철학흥신소 비밀 요원.

- 무려 NYU출신 (하지만 현재 당근 관련 일을 하고 있음)

-누구보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음(하지만 현재 상태, "삐뚤어 질 테다!")

- 자본주의와 인문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

- 오토바이타고 세계일주 했음(하지만 변한 건 딱히 없음)

- 요즘 철학 배우고 환골탈태 중. (하지만 살은 안 빠짐)

- 사람을 사랑할 준비 중.

- 어둠과 낮음을 정직하게 직면 중(졸라 아프고 있음)

- 특별함의 두려움과 평범함의 무거움을 껴앉으며 비범해지고 있음





매거진의 이전글[손나래 칼럼]기록되지 않는 자들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