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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 케익

자전거를 험하게 탄다. 하지만 어제는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탔다. 케익을 샀기 때문이다. 어제는 3개월간의 고된 글쓰기 수업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들에게 줄 케익을 샀다. 자전거 앞 바구니 케익을 넣고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았다. 수업 장소에 도착해서 상자를 열어보니, 조심스러움이 무색할만큼, 동그란 케익은 네모나져 있었다. 속이 상해 헛웃음이 났다.  

    

 헛웃음이 멈추자, 걱정이 찾아왔다. 지난 3개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조심스러웠던 3개월이었다. 혹여나 상처주지 않을까 조심스레 페달을 밟으려 애를 쓴 3개월이었다. 하지만 나의 조심스러움에 불구하고 찌그러진 케익처럼 그들이 상처받았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분명 그들은 나의 어떤 이야기들에 아팠을 테다. 찌그러진 케익을 보며 미안함이 찾아들었다.      


 민망한, 미안한 마음으로 잔뜩 찌그러져 있는 케익을 꺼냈다. 제자들은 환한게 웃어주었다. 걱정과 미안함이 잦아들었다. 케익을 한 입 가득 입에 넣었다. 달콤했다. 그래. 달콤했다. 이것이 내가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나. 삶이 어디 우리 마음처럼 되던가. 조심하며 살아가려 해도, 늘 여기저기 부대끼며 찌그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니던가.   

  

 찌그러진 케익을 보며 속상할 수 있다. 하얗고 동그란 이쁜 케익이 아니어서. 하지만 케익이 소중한 이유는 하얗고 동그래서가 아니다. 달콤해서다. 우리네 삶이 그런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지난 3개월 동안 우리의 케익은 어느 곳에서는 상처 입고 찌그러졌을 순 있겠지만, 어젯밤 그 케익은 그 어떤 케익보다 달콤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삶들도 그렇게 맞이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찌그러진 케익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아갔으면 좋겠다. 지난 3개월 동안, 힘껏 써준 다섯명의 제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괜찮다. 글쓰기 수업을 끝내며,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또 한 번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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