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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딱지

술을 한 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치고 싶었던 거였을까? 늦은 밤 여느 날처럼, 수업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작은 사고가 났다. 내리막길에서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다. 귀찮아서 대충 씻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피딱지가 되어 있다. 


 상흔. 상처를 입으면 흔적이 남는다. 육체적인 상처만 그럴까. 정서적인 상처 역시 마찬가지다. 상흔이 남는다. 큰 상처는 큰 상처대로, 작은 상처는 작은 대로 상흔을 남긴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흔, 그것이 피딱지다. 무릎의 피딱지를 보며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어제 스물을 조금 넘긴 아이를 다그쳤다. 너의 질투심과 시기심이 네 삶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그 아이를 걱정해서 했던 말일까? 아니다. 그 아이에게 질투심과 시기심이 없었느냐? 아니다. 나는 그걸 분명 보았다. 하지만 다그치듯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 아이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에, 얼마든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기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여느 때처럼 묵묵히 기다려주지 못했다. 조금은 과하게 그 아이를 다그쳤다.    

  

 왜 그랬을까? 나의 정서적 피딱지 때문이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예상치 못하게 자전거에서 넘어진 것처럼, 마음을 그렇게 다쳤다. 편안히 갈 수 있는 내리막길이라 안심하고 페달을 밟았기에 다친 것처럼, 나는 누군가의 질투심과 시기심에 다쳐버렸다. 그렇게 무릎팍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쓰린 피딱지가 아직 다 굳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던 게다. 아직 굳지 않은 피딱지는 만지지 않아도, 만지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쓰리다. 그래서 움찔거리게 된다.

     

 부끄럽게도, 어제 어린 제자를 다그친 것은 나의 부족 때문이다. 나는 어제 그 아이를 보지 못했다. 그 아이를 통해 내게 상처를 준 이를 보았다. 그렇다. 어제의 그 부끄러운 다그침은 움찔거림이었다. 아직 굳지 않은 피딱지가 다시 벌어질 것 같아서 반응한 움찔거림. 무릎의 피딱지보다 마음에 남은 피딱지가 훨씬 크고 깊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에게 사과해야겠다. 그리고 예전처럼, 묵묵히 기다려 주는 선생이 되어야겠다.


 대단히 훌륭한 선생은 못되어도, 적어도 부끄러움을 아는 선생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피딱지가 벌어질 것이 두려워 움찔거리고 싶지 않다. 나를 보호하고 싶어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는 못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으니까. 어제 다쳐서 얼마나 다행인가. 무릎팍의 피딱지가 없었다면 마음의 피딱지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제 움찔거리지 않을 테다. 가만히, 가만히 쓰라림을 견뎌낼 테다. 무릎에 새살이 돋아 피딱지가 자연스럽게 떨어지듯, 내 마음의 피딱지도 그렇게 떨어져 나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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