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씨네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로제타(Rosetta, 1999)

“누가 '로제타'를 진흙탕 싸움으로 내몰았는가?”

 로제타(Rosetta, 1999),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다르덴 형제는 벨기에 출신. 형(장 피에르 다르덴)은 드라마를 전공했고, 동생(뤽 다르덴)은 철학을 전공했다. 이 영화로 벨기에서는 '로제타 플랜'이라는 청년의무고용제도가 촉발되었다. 

*로제타 플랜(Rosetta Plan) : 2000년 벨기에에서 실시되었던 청년의무고용제도.





“누가 로제타를 진흙탕 싸움으로 내몰았는가?”


진흙탕 싸움. 최소한 인격마저 내려놓은 싸움을 말한다. 로제타는 진흙탕 싸움 중이다. 이것이 그녀가 장화를 신는 이유일 테다. 로제타의 장화는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였을 테다. 그녀는 왜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된 것일까? 세 가지 이유가 중첩되어 있다. 우선은 피해의식이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규직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로제타는 누군가 자신을 음해했을 것이라 오해해버린다. 그렇게 애먼, 아니 로제타에게 애정이 있을지 모르는 동료에게 악다구니를 한다. 로제타는 피해의식 덩어리다.      


 이유는 또 있다. 평범에 대한 집착. 로제타는 평범에 집착한다. 알콜 중독에 몸을 파는 엄마. 트레일러 생활을 혐오하는 로제타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 “너는 평범하다. 나는 평범하다. 나도 이제 친구가 있다” 잠들기 전 주문을 거는 로제타 아니던가. 부유한 삶에 대한 집착은 진흙탕 싸움의 동력으로는 부족하다. 진흙탕 싸움을 해본 이는 안다. ‘부유함이 뭐라고 최소한의 인격마저 내려놓고 짐승처럼 살아야 하는가.’ 회의감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을 위한 싸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평범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아닌가. 그러니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진흙탕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싸움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지 못한다. 하지만 진흙탕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혹시라도 그 싸움에서 이기면 평범(최소한 존엄)을 지킬 수 있다. 평범한 삶에 집착은 진흙탕 싸움의 충분한 동력이 된다.       


 세 번째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밀어내는 것이 진흙탕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이 유일하게 자신에게 인격적으로 대해주었던 리케의 뒷통수를 친 이유다. 이로써 로제타는 진흙탕 싸움에서 승리하고 그토록 원하던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그녀는 행복했을까. 아니다.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로제타는 진흙탕 싸움에서 승리하고는 서럽게 운다. 그리고는 사장에게 이제 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로제타는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로제타가 진흙탕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누구의 잘못인가? 가난인가? 엄마인가? 사장인가? 리케인가? 아니다. 그 진흙탕이 바로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라는 진흙탕은 피해의식을 양산하고, 평범에 집착하게 만들며,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으면 평범조차 불가능하다고 외친다. 내 안의 로제타를 본다. 내가 바로 로제타다. 피해의식에 찌들어 있던 나. 평범에 집착하던 나. 나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해칠 준비가 되어있던 나. 나 역시 로제타처럼, 진흙탕 싸움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이 진흙탕 싸움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최소한의 자긍심과 사랑이다. 로제타는 절대 몸을 팔지 않는, 리케처럼 삥땅은 치지 않는 자긍심이 있다. 그뿐인가? 리케의 뒤통수를 쳤지만 그것을 견딜 수 없어서 소중한 일자리를 버릴 만큼의 자긍심은 있다. 이 마지막 자긍심조차 없다면 진흙탕 싸움에서 빠져 나올 길이 요원하다. 하지만 자긍심만으론 부족하다. 자본주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랑이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 리케의 맥주와 토스트, 그리고 마지막 부축이 없다면 로제타는 진흙탕에서 몸을 일으키기 어려웠을 테다. 리케의 맥주와 토스트 그리고 마지막 부축은 사랑이다. 그것이 이성적 사랑이든, 인간애든, 노동자끼리의 연대이든, 그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없다면 진흙탕 싸움에서 빠져나오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테다. 자긍심에 사랑이 더해질 때만 자본주의라는 진흙탕에서 한 걸음을 빠져 나올 수 있다. 최소한의 자긍심과 사랑.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장화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계선(Gräns, Border, 20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