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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죽음, '아모르 파티'

서른 여섯의 여름을 떠나 보내며

“오늘, 추워”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제일 먼저 한 이야기였다. 정말이다. 추웠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전기세 걱정에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잠을 청할 때면 흥건히 땀을 흘려야 했던 어제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일이 순차적으로 서서히 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건, 무더위에서 서늘함으로 가는 건, 서서히 그래서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섬세한 사람들은 안다. 결국 세상일은 어느 순간에 단절적으로 변한다는 걸. 어제 무더위에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지만, 오늘은 약간의 추위를 느낄 정도로 서늘함에 잠에서 깬 것처럼.      


 비단 날씨만 그럴까? 사랑하는 이의 등장,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어느 순간 갑자기 덮쳐오는 것이다. 우리의 몸도 그런 것 같다. 이제 마흔 중반을 넘어서는 형님이 있다. 우울하다며 술 한 잔을 하잔다. 어제까지 잘 보이던 글자 오늘 안보였단다. 눈에 문제가 생겨서 안과에 갔단다. 차라리 눈에 문제가 생겼으면 좋았을 것을. 노안이란다. 노안이란 진단에 알 수 없는 서글픔과 우울함을 비껴갈 수 없었던 게다.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결국 어떤 단절적이고 분절적인 어떤 사건에 의해 우리는 몸의 늙음을 자각한다. 이처럼 날씨든, 세상사든, 우리의 몸이든 우리는 어떤 분절적이고, 단절적인 사건에 의해 삶을 새롭게 맞이하게 된다.      


 오늘 아침, 여름이 죽었다. 7월 중순부터 시작된 무더위는 한 달 넘게 지독히도 나를 괴롭혔다. 먹는 것을 삶의 제일 큰 낙으로 삼던 내게 식욕을 앗아갔으며, 무더위를 뚫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내달렸을 때 느꼈던 어지럼증을 다시 느끼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글을 쓸 때 집중력이 흐트러졌단 사실이다. 여름이, 무더위가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서운했다. 서른일곱, 고되고 힘든 삶만큼 나를 괴롭혔던 여름의 죽음이 서운했다. 지긋지긋하다며, 빨리 끝나기를 원했던 여름과 무더위였지만 막상 떠나고 나니 묘한 아쉬움이 생겼다.      


 싯타르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은 ‘고통의 바다’(苦海)다. 삶 도처에서 고되고 힘든 일들이 불쑥 불쑥 터져 나온다. 그게 삶이다. 그때 마다, 자신을 괴롭히는 그 일이 얼른 사라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겠다. 즐겁고 유쾌한 일도 내 삶이고, 괴롭고 고된 일도 내 삶이란 걸. 그 모두 소중한 내 삶이다. 그래서 죽어버렸으면,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매일 아침 악다구니하는 것들 대해서도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다. 그것 역시 내 삶의 일부이니까. 지독히도 무더웠던 여름을 떠나보내며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고되고 힘든 삶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토록 많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고되고 힘든 삶이기에 그래서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삶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 삶을 살아낼 나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의 떠남과 죽음 앞에서 여지없이 서운함과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여름을 떠나보내며 느낀 그 서운함과 아쉬움은 애정의 다른 이름이었던 게다. 어느 철학자가 내게 했던 ‘아모르 파티’라는, ‘삶을 사랑하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서른여덟 맞이할 내년의 여름의 무더위는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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