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떻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요?

디오게네스 ‘시니시즘’

불행의 진짜 이유


불행한 이들이 넘쳐난다. 이유가 무엇일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명백한 불행의 이유들이 차고 넘치는 까닭이다. 못생겨서. 키가 작아서. 몸이 약해서. 못 배워서. 직장이 없어서. 가난해서. 이혼해서. 부모가 없어서. 그런데 가끔 의아하다. 그 명백한 불행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불행해보이지 않는 이들을 만나게 될 때 그렇다. 하지만 그 의아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의아함을 불행한 이들의 ‘자포자기’(“이렇게 생겨먹었는데 어쩌겠어”)나 ‘정신승리’(“그래도 나정도면 괜찮은 거지”)로 예단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성급한 예단은 안목의 부재일뿐이다. 명백한 불행의 이유를 갖고도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명백한 불행의 이유(작은 키·약한 몸·가난·이혼 등등)는 불행의 진짜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를 진짜 불행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위축감이다.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생긴 위축감. 못생기고 가난하고 직장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다. “넌 왜 그리 못생겼니?” “넌 돈도 없니?” “넌 아직도 취업을 못했니?” 세상 사람들의 이런 차가운 시선에 의해 점점 쪼그라들었기에 불행하다. 이것이 진짜 불행의 이유다.


불행에서 벗어날 두 가지 방법


이제 우리는 불행에서 벗어날 두 가지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첫 번째는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제거하는 일이다. 못 생긴 사람. 몸이 약한 사람, 못 배운 사람, 직장이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이혼한 사람. 부모가 없는 사람. 세상 사람들이 이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으면 된다. 결국 불행은 위축감에서 오는 것 아닌가. 그러니 그 차가운 시선을 제거하면 위축될 일도 불행해질 일도 없다. 이 방법은 불행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 세속에 치여 사는 많은 이들은 타인의 불행을 먹고 사니까.


 두 번째 방법이 있다. 위축되지 않기. 결국 우리는 이 방법으로 불행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은 쉬이 제거되지 않을 테다. 그러니 그 차가운 시선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함을 유지하는 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것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차가운 시선 앞에서 어떻게 위축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분명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불행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당당해 질 수 있을까요?" 



‘개’ 같은 철학자, 디오게네스

 

이 질문의 답은 ‘디오게네스’에게 들어보자. “어떻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디오게네스라면 이렇게 답해줄 것이다. “개처럼 살아가거라!” 이 황당한 대답의 진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에 대해 알아보자. 디오게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시대 철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당대의 명망과 품위를 유지하려는 철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기행을 일삼는 괴짜 중에 괴짜였다.


 전해지는 디오게네스의 기행들은 황당함을 넘어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가 매일 기거했던 집은 시신 매장을 위해 쓰던 커다란 독이었다. 또한 그는 늘 남루한 옷을 입고 구걸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기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디오게네스는 군중들이 모인 곳에서 자위를 행위를 하기도 했다. 디오게네스는 정말 ‘개’처럼 살았던 철학자다. 디오게네스의 이런 기행은 단순한 미친 행동이 아니었다. 디오게네스의 모든 기행은 그의 철학에 기반한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행복을 ‘인간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한 관습·전통·제도·교육·도덕·윤리·법률 같은 것들을 부정해야 한다고 여겼다. 디오게네스의 황당과 당황을 넘나드는 기행은 이런 그의 철학을 추구하는 삶이었다. 디오게네스는 단순히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플라톤이 디오게네스를 가리켜 ‘미친 놈’이 아니라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말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디오게네스의 ‘시니시즘cynicism’     


디오게네스는 개처럼 살았지만 사유하지 않는 개는 아니었다. 그는 ‘시니시즘cynicism’이라는 사상을 기초 세웠다. ‘시니시즘’은 무엇일까? 이는 흔히 말하는 '냉소주의'가 아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관습·전통·제도·교육·도덕·윤리·법률 등을 부정하며 인간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시니시즘’의 핵심적 내용이다. 그가 대중 앞에서 자위를 한 충격적인 행위도 이런 ‘시니시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생애를 정리한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을 살펴보자.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자위에 열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배도 이런 식으로 비비기만해도 배고픔이 사라지면 좋으련만”  그리스철학자 열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인간의 본성에는 성욕과 식욕이 있다. ‘시니시즘’, 즉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한 관습·전통·윤리를 넘어서려 했던 디오게네스에게 이 두 가지 욕구는 동일한 크기의 욕구였다. 하지만 그때나 2000년이 지난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에겐 전혀 그렇지 않다. 광장에서는 식사는 할 수 있지만 섹스는 하지 못한다. 이는 식욕보다 성욕에 더 강한 관습·전통·윤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니시즘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이 부조리를 폭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디오게네스가 광장에서 자위를 하며 “배도 이런 식으로 비비기만해도 배고픔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 세상 사람들이 광장에서 식욕을 해결하며 성욕을 상상할 때, 디오게네스는 광장에서 성욕을 해결하며 식욕을 상상했다. 디오게네스는 ‘시니시즘’적 표현으로 관습적·전통적·윤리적 의미에서 성욕과 식욕의 위상을 뒤집은 셈이다. 이를 통해 식욕과 성욕은 모두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며 이를 같은 크기로 긍정하며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시니시즘’을 역설했던 것이다. 


     

시니시즘과 당당함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차가운 시선 앞에서 어떻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 디오게네스라면 ‘개처럼 살아가라’고 말해주었을 테다. 이는 우리들도 디오게네스처럼, 커다란 독에 기거하며 남루한 옷을 입고 구걸하며, 광장에서 자위를 하며 살아가라는 의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시니시즘’적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일 테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시니시즘’적 삶이 당당한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이 의아함을 해소해줄 디오게네스에 관한 몇 개의 일화가 있다. 그것은 디오게네스를 흠모한 당대 최고 권력인 알렉산더 대왕과 관련되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의 앞에 서서 나는 대왕인 알렉산더이다.King Alexander, the great”라고 이름을 밝히자 디오게네스도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개인 디오게네스이다.Diogenes, the Dog” 그리스철학자 열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을 박대한 것으로 유명하다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와 내가 당신에게 해줄 일이 없는가?”라고 묻자그는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서 달라고 대답했다고대철학』 앤서니 케니     


 디오게네스는 당대 최고 권력자에게 주눅 들기는커녕, 자신은 개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또한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대왕의 호의에 햇볕이나 가리지 말라며 면박을 준다. 이것이 디오게네스의 ‘시니시즘’이다. 그에게 ‘대왕’은 별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들이 만들어낸 제도의 수장일 뿐이다. 인간이 정한 관습·전통·제도·교육·도덕·윤리·법률 같은 것들을 부정하려는 디오게네스에게 알렉산더는 그저 햇볕을 가리고 서 있는 한 남자일 뿐이었다.      


‘시니시즘’적으로 살면 당당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를 위축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인가를 얻고 싶다는 ‘욕심’과 무엇인가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다. 사장 앞에서 위축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장이 나를 승진시켜줄 수 있다는 ‘욕심’과 사장이 나를 해고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 아닌가. ‘시니시즘’은 이 ‘공포’와 ‘욕심’을 넘어서게 해준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 철학은 돈이 된다. 다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