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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복싱? 잘 맞고 잘 때리면 된다.

기본기는 중요할까?

기본기는 중요할까?

2분도 채우지 못했던, 스파링 같지도 않았던 첫 번째 스파링에 가장 실망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자신에게 너무나 실망스러웠기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이가 들면서 어떤 일이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본기에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평소 귀찮으면 건너뛰기도 했던 줄넘기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잽, 원투, 훅, 어퍼컷 같은 자세부터 모두 다시 점검했다. 정확한 자세가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했다.     


 “형님 오늘은 저분이랑 메쓰(메써드 스파링, 약한 강도의 스파링)한 번 하시죠?” 한참을 지켜보던 관장이 내게 던진 말이었다. 상대는 일반회원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아직 프로 선수들과 강도 높은 스파링을 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아 조금 기분이 상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아직 부족한 선수를 배려해주는 것 같아 조금 고맙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해야만 했기에 “네”라는 짧은 대답 후 링에 올랐다. 링에 오르면서 딱 하나만 생각했다. ‘연습했던 기본기를 정확하게 사용하자!’ 



 “형님, 복싱은 잘 맞고, 잘 때리면 되는 거예요.” 메써드 스파링을 끝내고 링에서 내려오는 내게 관장이 한 말이었다. 처음엔 뭔 소린가 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내게 관장은 덧붙였다. “기본기에 충실하려고 하신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움직임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얘(관장)는 아직 어려서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구나.’ 그렇게 관장의 이야기를 대충 흘려버렸다. 다음 날, 코치가 내게 영상을 하나 보내주었다. 어제 메써드 스파링 영상이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내 영상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메써드 스파링 내내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마치 나무토막이 복싱을 하는 것 같은 낯 뜨거운 모습이었다. 그제 서야 한 관장의 이야기가 납득이 되었다. 기본기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움직임 더 안 좋아졌던 게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상대에게 집중하고 그의 움직임에 맞춰 적절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 복싱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오직 내 기본기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니 복싱을 처음 시작하는 몸치 회원들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게다.



복싱은 잘 맞고, 잘 때리면 되는 것이다

기본기는 중요하다.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 기본기는 실전에서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실제 스파링이나 시합에서 기본기대로 정확한 자세를 구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유능한 복서들은 실전에서 가끔 엉터리같은 혹은 변칙적인 자세로 공격하고 방어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기본기를 모르거나 기본기에 충실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상대의 순간순간 움직임에 맞춰 상황 상황마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그게 복싱이다. 


 “복싱은, 잘 맞고 잘 때리는 되는 거예요”라는 관장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관장은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순간순간 변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 테다. 기본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실전에서 기본기에만 집착하면 결국 움직임이 경직되어 수시로 변화는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기본기는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도 효과적인 공격과 방어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기가 중요하다. 기본기 자체에 집착할 때 그것은 오히려 복싱에 방해가 된다.



 좋은 복서는 기본기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실전의 유연함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초심자에게는 말처럼 쉽지 않다. 혼란스럽고 불투명한 순간에 직면할 때는 본질로 돌아가는 것보다 지혜로운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복싱의 본질은 무엇일까? 단순하다. 상대의 공격은 잘 방어하고, 상대를 잘 공격하면 된다. 그게 복싱의 본질이다. 서로의 주먹이 쏟아지는 링 위에서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단순해져야 한다. 특히나 나 같은 초심자에게는 말이다. ‘잘 맞고, 잘 때리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링 아래에서 지겨운 기본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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