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춤추지 않은 날은 잃어버린 날이다. 그리고 한 번도 웃음을 주지 못한 진리는 모두 가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나의 철학수업은 개그콘서트를 지향한다!” 제자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가벼운 농담이 아니다. 나의 철학수업의 모토는 ‘재밌게’이다. 철학적 깊이, 다양한 지식, 폭넓은 해석 등등 철학수업이 지향해야 할 덕목들이 많다. 다 안다. 하지만 나는 그 중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 철학적 깊이가 얕아지더라도, 다양한 지식을 전하지 못하더라도, 폭넓은 해석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재미있으면 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철학수업에 대해 돈을 더 벌려는 자본주의적 얄팍함이라고 비난한다. 또 어떤 이는 이런 철학 수업은 천박하며 진중하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그 또한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오해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재밌게’ 수업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재밌게’ 수업할 것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고마움 때문이다. 나의 수업을 들으러 오는 이들은 저마다의 직장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찾아오는 이들이다. 철학은 아무리 쉽게 가르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애를 써야 이해할 수 있다. 고된 일을 끝내고 철학을 공부하러 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철학 선생도 많고 나보다 더 훌륭한 철학 선생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고된 일을 마치고 나를 찾아와주는 이들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 고마움으로 나를 찾아오는 이들을 많이 웃게 해주고 싶다. 일터에서 지친 그네들에게 작은 웃음을 줄 수 있다면 나의 역할을 그것으로 되었다. 우스꽝스러운 광대가 되면 어떤가. 너무나 고마운 이들 앞에서 진중한 철학자 대신 가벼운 광대가 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는가. 기쁜 마음으로 광대가 된 이들은 안다. 광대가 되어도 좋을 소중한 이들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두 번째가 이유가 있다. 심각한 철학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오는 이들은 저마다 상처와 아픔이 있다. 나는 철학을 가르치며 그 상처와 아픔을 직면하게 한다. 그네들은 수업을 들으며 삶의 진실을 들춰내는 철학을 발견할 때면 종종 심각해진다. 수업 중에 스쳐지나가는 우울과 눈물은 그네들의 심각한 마음일 테다. 어찌 그네들의 마음을 모를까?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에 직면하면 우울과 눈물이 드리울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 나는 실없는 농담이나 맥락 없는 말장난으로 그들을 웃기려 한다.
철학은 진지한 것이지 심각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진지하다. 진지眞摯는 '진짜로 꼭 쥔다'는 의미다. 진짜로 철학을 꼭 쥐어본 이들은 안다. 잠시의 심각한 뒤로 미소와 웃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심각한 것은 거짓이고 연기다. 마치,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나기 때문에 슬퍼지는 것처럼 말이다. 진지한 성찰은 잠시의 우울과 눈물을 낳지만, 이내 명랑과 웃음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심각함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계속 우울과 눈물 속에 우리를 머무르게 한다. 그것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다.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심각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심각함으로부터 빠져나와 유쾌하고 명랑해지기 위해서다. 심각한 표정으로 철학을 하지 말라! 이것이 나의 ‘철학’에 관한 철학이다. 니체의 말처럼, 한 번도 웃음을 주지 못한 진리는 모두 가짜니까 말이다. 이것이 내가 ‘개그콘서트의 철학’을 표방하는 이유다. 이것이 내가 제자들에게 ‘많은 웃어라. 그것이 철학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진지한 철학은 명랑한 웃음이 머무는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