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터지게 해볼 것! 이것이 안 되는걸 포기할 자격이다. 황진규
강제당하고 싶었다. 강제당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 헤맸다. 그 '한 사람'만 찾으면 나는 뭐든 해결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나는 늘 위축되어 있었다. 그 한 사람이 '아무나' 여도 되어서 모두에게 위축됐다. 아니 아무도 내가 원했던 그 '한 사람'이 아니라서 위축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지하철을 타면서 저 할아버지는 나를 사랑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삶은 무기력을 넘어 해체되어 버렸다. 그렇게 내가 서 있는 곳은 아무 것도 자랄 수 없는 산성화된 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체 냄새가 풍기는 나는 누구나 꺼려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삶을 살아내기로 선택한 적 없다. 선택되어졌을 뿐이다. 굳은 의지가 생긴것도 아니었고(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 하나도 없다.)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게 되어 그를 지켜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런 건 다 기만적 구라다. 산성화되어 버린 땅에 남은 건 '악' 밖에 없었다. 그 악으로 굴러가든 기어가든 뭐라도 했다. 그렇게 염기성을 쥐어짰다.
'노력하면 성공한다' 따위의 '원인-결과 순간'이 아닌 '그냥 하는 순간'들이 쌓였다. 그 '그냥 하는 순간'들과 나의 발걸음은 동시적인 거였다. 나의 정신을 믿지 않는다. 하도 구라가 많아서. 나도 모를 구라가 많아서. 내가 제일 못 믿는 건 나의 대가리다. 그저 내 몸이 움직여진만큼이 '나'라는 것만 본다. 모든 게 해체된 삶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주침을 감당하려 할 뿐이다.
무기력을 피하기 위해 부자유한 삶을 살고 있다. 강제하는 삶은 무기력의 결과를 초래한다. 무기력해질 수 없어서 부자유하게 살고 있는데 이는 다시 양동이에 흙탕물을 가득채워 머리 위에 쏟는 것처럼 무기력은 그렇게 온다. 다 뜯어버리고 싶고 다 끊어내버리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다시 산성으로 가득해져 나에게 한 걸음 다가오는 인연들조차 식도가 타는 것처럼 녹여버릴 것 같다.
혼자서는 더 이상 짜낼 염기성이 없을 때,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철학을 공부하는 어느 인문공동체를 찾는다. 그곳은 정말 인간개조의 용광로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몸을 누인다. 그때 염기성이 나를 감싼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산성은 중화된다. 그렇게 녹아내리고 있는 내게 보호막 한 겹을 덧대준다. 출근길에 심장병 걸린 것 같고 다시 방에 쳐박히고 싶은 관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만난 좋은 사람들은 염기성이다.
좋은 사람들이 있는 인문공동체에 가면 늘 복잡해지고 무거움을 느낀다. 그곳은 염기성이니까. 하지만 그곳에 가면 나는 가벼워진다. 나의 땅은 산성이니까. 그렇구나. 무거움을 느끼지 않고서는 가벼움을 맛볼 수 없는 것이구나.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 가라앉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찰나의 순간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모를 원리로 정신개조가 되는지 '그래 한 번 다 덤벼. 나 안 물러나!' 악바리 같이 또 정신무우우장을 한다.
쭈그러져있지만 쌈닭이다. 하지만 쌈닭이 아닌 야생동물이 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제당하고 싶었던 그 유일한 항마저 없었다면 나에게 염기성을 선물하는 인문공동체에 올 수 없었겠지.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지. 그랬다면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을 피하며 살았을 것이다. 철학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 말했다. "철학은 미뤄두고 월300부터 벌어라"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포스트모던이니 들뢰즈니 하는 이야기들은 미뤄두고 월300 버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아마 두 달 후에 난 계약연장이 되진 않겠지만 내가 일한만큼은 챙기려고 애를 썼고 그렇게 300이 되었다. 한 걸음이다. 거기서부터 오늘은 한걸음. 한 번에 두 걸음을 걸으려고 하면 기만이 되고 구라가 된다. 철학 수업을 듣지만 뭔말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다만 철학 선생의 말처럼, 들이닥치는 모든 것들을 감당한다면 그 마주침으로 위아래로 몰랐던 퍼즐이 어느 순간 맞춰지기를 바랄 뿐이다.
무색이 풍기는 쩐내를 씻어내리기 위해서는 비를 맞으러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그것 밖에 방법이 없다. 앞으로 더 힘들 거라는 걸 알지만 다 그렇게 산다.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본 세상은 고통뿐이었지만 또 내가 모를 기쁨도 있었다. 정직한 고통은 기쁨을 주기도 했다. 비겁하게 고통을 피한 것만큼 슬픔이 없었다. 오늘만이 만들어낼 지층을 쌓아간다.
나는 지금 내게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머리통이 깨질 때까지 그 안되는 것을 될 때까지 해나가고 있다. 그렇게 내가 할 없는 것을 알아가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은 기쁨이겠지. 그때, "안 되는 건 포기하는 거야"라는 철학 선생이 했던 말의 의미를 알게 되겠지. 그때가 내가 서 있는 땅에 꽃이 피는 날일 것 같다.
땀내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땀내나면서 향수를 뿌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향수보다 땀내가 좋아 향수를 뿌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건너 뛸 수 없다. 날로 먹는 게 없다. 쉽게 가려고 하는 게 더 조때는 거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샤넬백을 맸지만 생기가 없는 할머니가 아닌, 백팩을 메고 청자켓이 어울리는 백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의 것인 아름다움마저 잃고 싶지 않다.
내일도 비를 맞으러 가야겠다.
김혜준
-철학흥신소의 성장'률' 원탑(성장률은 시작이 낮을수록 높다.)
- 초능력 보유자였음(초면에 아무말도 안했는데 사람 존나 답답하게 만듦)
-수업료 환불해주고 싶었던 첫번째 고객님.
-현재, 월 300 버는 뇨자. (현재 초능력 상실 중)
-철학흥신소와서 '사람'되어가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