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자신을 키운다는 말이다. 이는 얼마나 무거운 말인가? 자신이 크지 않으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말이니." 황진규
지난 늦여름 지안이 태어났다. 나 또한 여름에 태어났다. 생일이 여름방학 중이라 학창시절 '진짜' 내 생일에는 반 아이들에게 축하를 받지 못했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던 엄마는 나에게 '가짜' 생일을 선물해주었다. 어릴 적 엄마는 생일잔치를 방학 전으로 당겨 열어주었다. 그 땐 공동육아가 흔한 일이었기에, 동네 아줌마들이 열심히 도와 음식을 잔뜩 만들어 생일상을 마련해 주셨다. 내 맘 속에 따스한 기억의 조각으로 남아있다. 나는 반 아이들이 가득 둘러싼 생일잔치상을 받으며 무척이나 신났었고 며칠 동안 연습했었던 노래도 부르며, 주인공의 기분을 맘껏 뽐냈었드랬다.
임신중에 자꾸 그 때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나와 아기의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요즘같은 시대에 굳이 생일을 당기고 늦출 필요가 있나 싶다. 언제든 닿을 수 있는 온라인의 시대속에 살고있으니 말이다. 엄지손가락만 몇번 움직이면 생일축하도, 생일 선물도, 흔한 안부도 너무도 쉬워진 세상. 아무튼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흔하고 뻔한 일을 말이다.
'육아=힘든 것'이라는 것은 마치 'f=ma'라는 물리 공식처럼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닥쳐보니 육아는 생각보다 곱절은 더 힘들었다. 요즘 그 힘든 리얼육아의 세계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그 힘듦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나 다양한 방법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은 나를 돌아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있는 중이다.
고백컨데 사실 나는 육아에 조금 자신이 있었다. 사랑을 가장한 소유욕은 절대적으로 경계해야한다는 것을 내 개인적 경험으로 또렸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설프게나마 철학을 접하며 내가 갖고 있는 편협한 사랑의 마음이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기 때문이다. 난 내 아기에게 세상에 만연한 자본주의적 순위매기기 삶은 살지 않도록 자유롭게 키우리라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 앎에서 삶으로 내딛는 내 첫걸음이 누구보다 성공적일 것이라 자신했다.
그런데 말이다. 태어난지 100일이 채 안되는 아기에게 이런 마음이 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지안의 수유량이 늘 먹던양에서 현저히 떨어지자, 겁이 덜컥났다. 왜 이러는거지? 왜 안 먹는거지? '다른 애들은' 벌컥벌컥 3분이면 다 먹던데, 왜 얘는 몇 모금되지도 않은 양을 1시간째 깨작거리고 있는거지? 분유 문제인가 싶어 분유를 네번은 바꿨고, 중간중간 젖꼭지 싸이즈를 바꾸기도 했다. 가슴이 타들어갔다. 하루에 5~6번 수유하니 하루에 5~6번이 지옥이었다.
오늘도 잘 안먹겠다 싶어 적게 타서 주면 끝까지 또 잘 먹기도 했지만 부족하다싶어 다시 좀 더 타주면 이미 리듬이 깨져 안먹었다. 이렇다보니 싱크대에는 몇모금 빨지않아 한참이 남은 젖병이 쌓여갔다.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남은 분유를 콸콸콸 쏟아부으며 왜 얘는 다른애들과 다르게 유별나게 이러는 걸까 인상이 찌푸려졌다. 비싼 유산균을 넣었는데 안먹기 시작하면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러다가 내가 스트레스로 몸져 누울것 같았다.
이제서야 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강박증자였다. 내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자 화가나는, 개썅 마이웨이 강박을 부리고 있었다. 실은 나는 상대의 삶의 방식을 여유롭고 배려심 넘치게 받아들여주는 쪽의 사람이라고 믿었다. 일을 할 때도 나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했고, 점심메뉴 하나도 다른 사람의 취향에 맞추는게 편했으며, 업무보고가 있을 때면 타인이 기대하는 수준에 적어도 10%이상은 더 해내어 칭찬받으려 했다.
의심이 든다. 나의 타인 존중은 나의 인정욕이나 그 인정욕의 파생이지 않았을까? 소유욕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는 부모들을 욕했으며 그들의 욕심이 역겨웠다. 나 또한 그 지독한 욕심의 피해자가 아니었던가. 이 조그만 아이를 키우며 이토록이나 감정이 격해질 일인가? 정인이 사건의 그 괴물같은 양모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있지는 않았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분노는 아마도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눈물이 나고 처절하게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마음을 고쳐먹어야 했다. 나를 제대로 마주해야 했다. 강박증자는 아이를 행복의 길로 안내할 수 없다. 그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생각들이었다. 나는 나를 바꾸지 않으면서 내가 아는 ‘앎’만으로도 가능하리라 자신했다.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나를 찢어발겨 해체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키우는 것이라 했던가. 그것은 조금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가 먹기 싫어하면 거기서 멈추기를 10일이 조금 지났을까? 갑자기 지안이 잘 먹기 시작했다. 나의 강박이 그 작은 아기에게도 부담이 되었던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 젖꼭지를 들이밀며 억지로 먹여야 하는 나와 그 시간들이 아이는 얼마나 싫었을까? 내가 하루에 5~6번 지옥이었을 동안 지안 역시 하루에 5~6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엄마의 감정이 그대로 아기에게 전달된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건 진실이었다.
앎에서 삶으로 가는 여정은 이토록이나 고되다. 지금 나는 그 처음을 허둥지둥 해가고 있다. 조금씩 나의 오만을 마주하는 중이다. 아이는 눈부시게 예쁘다. 그래서 고맙다. 나의 못난 모습에도 저렇게나 환하게 웃어주니까. 아픙로 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마음의 부침이 있을련지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새롭게 정의내린 ‘사랑’을 대입해보려고 한다. 너무나도 소중해 갖고 싶지만, 결고 가지려 하지 말 것. 그 눈부심을 그 자체로 지켜봐줄 것. 더 빛나도록 사랑이 넘치는 눈빛으로 오래 바라봐줄 것.
"나는 너의 비빌언덕, 돌아보면 늘 따스하게 지켜보고 있는 든든한 너의 편이란다. 엄마가 늘 경계하며 살아갈게. 아직은 부족한 모습이라 미안해. 사랑한다."
- 근자감 10단(자신이 뭐든 잘할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음)
- 현재, 아이를 키우며 근자감 하락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