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경칼럼]타투

진짜 욕망은 지금 욕망 너머에 있다.
이것이 지금, 욕망을 따라야 하는 이유다. 황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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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를 했다. 왼쪽 팔꿈치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팔 안쪽이다. 반팔 티를 입고 돌아다니면 시선이 정면으로 꽂히는 그 부위에다가 6.5 x 6.5 cm 정도의 크기로 도장을 쾅 박아버렸다.


타투에 대한 욕망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아마도 중고등학생 때쯤? 어떤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타투를 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자유로워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서른 살이 되었는데도 그런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왼쪽 팔에 흉터가 생겨버려서, 어차피 반팔 입는데에 제약이 생긴 김에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타투를 질러버렸다.


나는 내 몸을 함부로 다루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어린시절부터 받아온 억압에 따른 결과일 테다. 나의 부모님은 나의 몸이 나의 몸이 아닌 것처럼 느낄만큼, 자식들을 심하게 과보호하는 분들이셨다. 스무살 이전까지는 내 이동 동선에 대해 부모님은 두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하였고 스무살 이후에도 각종 금기들로 나를 그네들의 곁에 붙들어 두려고 하였다.


나는 부모님의 소유물이었다. 부모님도 나를 소유하고 싶어했고, 나도 부모님에게 소유되고 싶어했다. 나는 파랑새였다. 동화에 나오는 새장 속 파랑새처럼 바깥세상을 동경하지만, 새장 문을 열어주어도 날갯죽지에 힘이 없어 날아갈 힘도 의지도 없었던 볼품없는 새. 시간이 흐르며 부모님은 남자친구가 되기도 했고 지도교수가 되기도 하며 얼굴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나는 내 몸에 둘러져 있는 쇠사슬이 포근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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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쇠사슬은 쇠사슬이었다. 그 쇠사슬이 너무나 무겁게 나를 옥죄어 올때면 나는 나를 미워하곤 했다. 나를 지배하는 권력자를 미워할 수 없어서 나를 미워했다. 동시에 그들이 금했던 나의 자유를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가 내 안에서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상처가 난 곳을 계속 잡아 눌러 염증이 부풀어 오르듯, 내 마음의 상처 역시 부글부글 끓어오르곤 했다. 그럴때면 나는 내 몸을 마구 난도질하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내 마음에 환기도 시켜주고 마데카솔도 발라줄 수 있었다. 그렇게 잔뜩 성이 났던 상처가 가라앉아 이제는 많이 아물었지만 여전히 그 욕망의 잔존물들이 내 무의식 어느 한편에 도사리고 있나보다. 억압에 대한 피해의식이 꽤 컸던걸까. 그들이 억압했던 것은 나의 신체와 마음에 대한 자유이지만 나는 그것을 그나마 덜어보려는 일환으로 (가장 소심하고 나약한 방식으로) 내 신체에 대한 훼손을 택했었나보다.


지나고 보니 이런 모든 행위들의 정체를 알 것도 같다. 나는 내 몸에 대한 자유를 내가 쥐고 있다는 무언의 선포를 하고 싶었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억압과 금기에 대한 저항감이 내가 타투를 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타투를 한 사람을 보면 자유로워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섹시했다. 나 또한 그렇게 자유로우며, 매력적이며, 섹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눈 질끈 감고 타투를 질러버렸다. 내가 타투를 한 이유 전부를 긍정할 순 없지만, 그것이 내 욕망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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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를 하는 동안은 기분이 참 복잡 미묘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서 놀랐다. 또 타투이스트가 굉장히 차분해서 마치 테라피 받는 기분이 들어서 웃음이 났다. 누워서 시술을 받는데 타투 바늘이 내 피부를 내 근육과 혈관의 섬유 하나하나를 미세하게 투두둑 끊어내는 느낌이었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색소가 스며들어가 들이차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떨림을 동반한 묵직하고 둔탁한 아픔이 싸리하고 잔잔하게 퍼지는 느낌이 좋았다. 화끈하게 느껴지는 열감도 묘하게 좋았다. 누워서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막상 타투를 하고 나니 생각보다 큰 환희는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이미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버려서 그런건지, 아니면 억압된 욕망을 해소해서 마음이 잠시 평온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마치 목욕을 한 것처럼 일상의 어떤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도안에 꽤 많은 의미를 담아서 디자인 했는데 타투를 끝내고 보니 그 의미 부여가 좀 우습고 민망스럽기도 했다.


타투를 바라보는데 허탈한 웃음이 났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두려워 했을까 싶어서. 타투를 한 나는 자유로운 사람인가? 매력적인 사람인가? 섹시한 사람인가? 타투를 하기 전 나와 타투를 한 나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기억을 안고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서 더 현타가 왔다. 절망에 가깝게 스스로에게 답답했지만, 아직 나는 억압된 욕망을 충분히 누려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후회가 들었나? 당연히 회사에서나 부모님에게 받을 따가운 눈총이 연상되어 두렵긴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내 몸에의 자유를 쟁취했다는 것, 에로티시즘의 추구, 관심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인한 기쁨이 더 크다. 현재 스코어 타투를 했던 경험 자체는 슬픔보다 기쁨이 더 크다. 경박스럽고 팔짝팔짝 뛰어다닐 정도의 경박한 기쁨이기에 부끄럽기는 하지만 억누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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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타투는 과도한 주체성의 발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누구에게 너무 많이 의존했기에 그런 내 모습을 혐오해서 주체성을 과도하게 추구했었으니까. 내 몸에의 권리를 주장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또 나는 타투를 한 사람들의 반항아적인 이미지도 동경했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이었으니까. 적절한 시기에 했어야 했던 싸움을 해내지 못했기에 반항하기에 이미 늦어버린 나이에 이르렀다. 나는 그걸 이제서야 하고 있는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욕망 수준은 청소년기에 멈춰있다.


만약 내가 타투를 직접 해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뭐든 직접 경험해보지 않기 전에는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엄청난 기분파라 하나의 욕망에 꽂히면 마치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보고 질주하는 야생동물마냥 시야가 매우 좁아져버린다. 결국엔 로드킬이라는 운명이 내 앞에 놓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후회는 미래의 나에게 미뤄버린다. 이런 나의 성향이 싫었던 적도 많았다.


충분히 사려깊게 벼리지 않은 욕망의 불을 끄기에 급급해서 성급히 선택했을 때, 나의 이런 강박증적인 면모가 누군가에도 상처를 주어 마음속 깊이 쓰라린 타투를 새겼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게 나의 동력이겠지 싶다. 그렇기에 잘 다뤄야하고 조심히 다뤄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게 된다. 부끄러운 내 모습을 마주하고 나니 늘 그렇듯이 쾌와 불쾌가 공존한다. 타투에 대한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흙탕물이 가라앉길 기다려봐야겠다.



홍보경

-철학흥신소 비밀 요원.

-한때 돼지 키웠던 여자.(지금은 돼지 사료 만들고 있음)

-철학흥신소에 와서 가성비의 삶 구현 중(유학 포기하고 취업해서 돈 벌고 있음)

-욕망 대식가(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아무 거나 먹고 있는 중.)

-철학흥신소와서 지 멋대로 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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