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경칼럼]외할아버지

"죽음을 늘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할 때만 살아 있다" 황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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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회사 이름이 적힌 우스꽝스러운 폼새의 양복을 걸친 장례지도사가 있다. 사람 몸체만 한 붉은 벨벳의 기다란 천에 할아버지 이름을 한자로 적는다. 봉황 ‘봉’ 자에 날개 ‘익’ 자라고 알려주니 “좋은 이름이시네!” 한다.


입관식 때 마주한 외할아버지의 시체는 아주 잘 만든 마네킹인지 아니면 잠시 낮잠에 들으신 건지 헛갈린다. 영혼이 떠나간 자리에 대신 들어앉은 것은 무엇인가? 텅 비었나? 아니면 가족들이 그걸 쓸쓸히 여겨 울음을 토해내 채워주었나? 남편의 죽음을 믿지 않았던 늙수그레한 아내는 남편의 죽은 몸 뚱아리를 앞에 두고서야 시들어버린 오열을 한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만져보니 그 촉감은 이 세상의 것도 저세상의 것도 아니다. 시신은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가는 정거장 같은 것인가보다. 머무를 수도 떠날 수도 없이, 안절부절하는 무엇을 꽁꽁 닫힌 시신에서 느끼고 나는 그만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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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소와 화장장에는 죽음의 냄새가 켜켜이 쌓였다. 묵은 때처럼. 온 사방 구석구석 빠짐없이 짙게 배여서 숨이 막힌다. 할아버지의 머리털과 장기와 뼈와 살과 피 역시도 이곳에 쌓이겠지. 할아버지의 죽음은 몇 번째 층일까? 그리고 나는 몇 번째 층일까? 내가 아는 이들은 몇 번째 층에 가서 몸을 뉘일까?


이북에서 태어나서 6.25 남북전쟁 때 홀홀단신으로 남한으로 건너왔다던 할아버지. 자기와 같은 신세의 할머니를 만나서 자식 셋 낳고 열심히 사셨다. 하나의 역사는 기쁨과 슬픔으로 펄펄 끓다가 이내 수그러든다. 그렇게 무거웠던 생의 모든 감각을 소진한 채 무無로 돌아간다. 기흉으로 인해 호흡기를 달고서, 호흡과 말을 내뱉는 것조차 어려웠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던 날 가슴이 시원하다고 하셨다. 이제 할아버지는 시원한 가슴을 안고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마음껏 노닐겠지.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혀두고 똥강아지 노래를 불러 주셨다. 어려서 기억에 없을 법한데도 나는 할아버지의 “우리 집에는 똥강아지 한 마리가 살았는데~” 하고 시작하는 노래가 귓가에 쟁쟁히 들린다. 할아버지는 날 보면 항상 요놈은 참 멋지게 산다고 했다. 그 말이 이제는 나의 척추에 덧대어진 하나의 줄기가 되었음을 안다. 다시는 할아버지 입에서 들을 수 없겠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갈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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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이야기 하셨다고 한다. “통일되면 나는 느그 집에 니는 우리 집에 함께 손잡고 가보자” 늙은 아내는 이제 손잡고 가볼 사람이 없다고 운다. 젊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하고 구박만 했다고 운다. 자식들은 몸이 성치 않은 모친을 걱정해 묘소까지 동행하지 못하게 하려 했으나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삽으로 흙을 덮으며 어머니도 울고 자식들도 울고 우리 모두 울었다. 가루가 된 백골은 저기 무심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어른들이 장례 치르는 비용을 논의한다. 할아버지 장례는 2200만 원짜리 장례란다. 할아버지가 아들을 잘 키운 덕에 의사 아들 앞으로 들어온 부의금은 2400만 원이란다. 할아버지 장례식장 앞집은 입구가 썰렁한데 우리 집은 근조화환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목숨값이란 말인가? 죽음은 누구에게나 기약 없이 평등하게 찾아오는데 무슨 이유로 그것에 값을 매기고 앉았는가. 살아남은 자들이 하는 일들이란 참 치사스럽기 그지없다.


집에 돌아와 세 시간을 내리 죽은 듯 잠을 잤다. 잠에서 깨니 시간과 공간과 내 몸의 감촉과 움직임이 삐그덕 어색하다. 나는 할아버지를 이승에서 정거장으로, 그리고 이제 저승으로 내려다 드리고 온 것이로구나. 잠시 왔다가 다시 떠나간 나그네. 나를 사랑해주었던 그 나그네를 이제 나는 촉감으로, 노랫소리로, 가슴에 새겨진 얼굴의 무늬로 기억할 것이다. 새벽공기에 울려 퍼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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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경

-철학흥신소 비밀 요원.

-한때 돼지 키웠던 여자.(지금은 돼지 사료 만들고 있음)

-철학흥신소에 와서 가성비의 삶 구현 중(유학 포기하고 취업해서 돈 벌고 있음)

-욕망 대식가(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아무 거나 먹고 있는 중.)

-철학흥신소와서 지 멋대로 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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