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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조건

혁명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어렵다. 혁명은 큰 기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혁명을 원하는 이들이 혁명에 가닿지 못하는 이유다. 큰 기적을 원하는 이들은 온 시선이 큰 기적만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 사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혁명 앞에서 ‘한 사람’은 언제나 희생되어야 할 존재로 여긴다. 어떤 이는 반드시 희생되어야 한다고, 어떤 이는 어쩔 수 없이 희생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차이가 있을 뿐, ‘한 사람’의 희생이 ‘혁명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 같다.      


 이것이 ‘좋은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이 흔한 이유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혁명을 꿈꾸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폭력적인 독단과 독선을 정당화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던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단체들의 부조리한 소식들(임금체불‧상명하복‧따돌림)을 접했을 때,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이란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온 몸을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혁명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한 사람의 희생은 결코 ‘혁명의 조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혁명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설적이게 ‘혁명-없음’이다. 즉,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심 없는 이들만이 혁명에 가까워질 수 있다. 오해는 말자. ‘혁명-없음’은 방관자적 무관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혁명-없음’은 작은 기적이다. 작은 기적은 ‘한 사람’ 곁에 진정으로 머무는 일이다. 바로 그것이 ‘혁명의 조건’이다. 



 직장에서 상처받은 친구에게 직장 상사 욕을 해주는 것. 가난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친구에게 돈을 선물하는 것, 남자 친구와 이별해서 슬퍼하는 친구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것. 외로움에 지친 친구와 함께 밥을 먹는 것. 죽고 싶다는 친구에게 살아달라고 작은 편지를 써주는 것. 이것은 기적이다. 세상을 바꾸는 '큰 기적'은 아니지만, '작은 기적'이라 할만하다. 한 사람의 곁에 진정으로 있어주는 일은 그만큼이나 드물고 귀한 일이니까 말이다. 


 어찌보면 사소해보일 수 있는, 이 ‘작은 기적’이 ‘큰 기적’의 토대가 된다. ‘혁명-없음’이 없다면 ‘혁명’도 없다. ‘작은 기적’ 없는 ‘큰 기적’은, ‘혁명-없음’이 없는 ‘혁명’은 비극적 일들의 전주곡일 뿐이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혁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그 수많은 폭력들을 보라. 잊지 말자. '한 사람'들을 죽임으로 내몰았던 참혹했던 거의 모든 전쟁은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었던 폭력이었음을.        


 나는 혁명을 원한다. 하여 혁명하지 않으려 한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내 깜냥껏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큰 기적’에는 관심을 끄고, ‘작은 기적’에 모든 것을 걸고 싶다. ‘혁명-없음’이라는 ‘혁명의 조건’ 아래서 '혁명'을 하고 싶다. 나는 '한 사람'의 곁에 머물고 싶다. 나는 그렇게 혁명,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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