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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대칭성

작은 문으로는 작은 선물 밖에 받을 수 없다. 사랑도 그렇다.


“저는 그냥 사랑받기만 하고 싶어요.” ‘사랑받으려면 먼저 아낌없이 사랑해주라’는 나의 이야기에 한 아이가 돌린 답이었다. 순간 웃음이 났다. 얼마나 귀여운 이야기인가. 아는 체하지 하지 않고, 성숙한 체 하지 않으니 말이다. 사랑받고 싶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이 마음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의 거의 모든 행동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치는 애절한 몸부림이다. 다들 그리 산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는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는 일임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모른 척하거나 일뿐이다.

 

“사랑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면서요?”  웃음을 준 보답으로 아이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주었다. ‘사랑을 받으려면 먼저 사랑해주라’는 나의 말이 ‘기브 앤 테이크’하는 계산처럼 들렸나보다. ‘철학’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복잡미묘하게 뒤엉킨 기존의 생각들에 결을 치는 일이다. 그렇게 뒤엉킨 생각들을 명료하게 해주는 일이다. ‘철학’하는 죄로 그 아이의 뒤엉킨 생각들에 결을 쳐주고 싶었다.


사랑은 계산이 아니다. 받기 위해 주는 것도 아니고 주기 위해 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랑받으려면 먼저 사랑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계산인 것 아닌가? 아니다. 이는 '계산성'과 '대칭성'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다. 사랑은 (‘계산적’이 아닌) ‘대칭적’이다.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을 주고 싶 않은 마음은 도둑놈 심보가 아니다. 그것을 도둑놈 심보라고 보는 이들은 사랑을 계산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지 않고 받고 싶은 마음은 어리석음일 뿐이다. “먼저 할 수 있는 만큼 사랑을 주라”는 말은 이타성이나 희생의 요구가 아니다. '사랑의 대칭성'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의 대칭성'은 무엇일까? 쉽게 말해 내가 준 사랑만큼만 '대칭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내가 100을 주었을 때만, 상대방도 100을 준다는 '계산적' 논리가 아니다. 내가 준 사랑만큼 ‘문’이 열린다는 의미다. 사랑받을 수 있는 문. 내가 상대에게 사랑을 30을 주면, 내가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문도 딱 그만큼 열린다. 상대방이 100을 준다고 해도 결국 30밖에 받을 수 없다. 그만큼의 문이 열렸기 때문에.


 사랑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 상대방도 자신에게 너무 잘해주는데 공허하고 외롭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종종 만날 때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다. 바로 그 자신이 문제다. 어느 누구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는 자신이 문제다. 그들의 공허와 외로움은 누구도 충분히 사랑을 주지 않았기에 벌어진 사달이다. 상대방은 100을 주더라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내 마음의 ‘문’이 10밖에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칭성’ 이 삶의 진실은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지 아닐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먼저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늘 손해만 보는 호구가 되는 것도, 이타성과 헌신을 장착한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먼저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는 것. 이것은 지혜로움이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지혜로움. 작은 문으로는 작은 선물밖에 받을 없다. 그러니 일단 사랑받을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주는 사랑이 얼마이든 그것을 모두 받아낼 수 있으니까.      


 끝없는 사랑의 갈구로 텅 비어버린 마음. 이는 더 사랑받으려는 게걸스러움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사랑의 대칭성’을 깨닫게 되었을 때, 바라지 않고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려고 했을 때만 겨우 채워질 수 있다. 사랑은 싸구려가 아니다.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귀하고 소중한 것은 구하기 어렵다. 사랑도 그렇다.


자연이나 예술에서만큼이나 사랑에서도 중요한 것은 쾌락이 아니라 진실이다. 질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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